프롤로그

1972년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

남매는 부엌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진 뒷문을 통해 집을 나섰다. 그들은 기이한 한 쌍이다. 스물일곱 살인 도널드 캘빈의 두 눈은 움푹들어가 있다. 머리카락은 완전히 밀어버렸고, 턱에는 성경에 등장할법한 후줄근한 턱수염이 자라나려 했다. 키가 도널드의 허리쯤 오는 일곱 살 먹은 메리 갤빈은 밝은 금발에 작고 둥근 코를 가졌다.
갤빈 가족은 콜로라도 우드먼밸리에 살고 있다. 경사진 구릉과사암 절벽 사이에 자리한 우드먼밸리는 숲과 들판, 농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지역이다. 갤빈 가족의 집 마당에서는 싱그러운 솔향기와 흙냄새가 났다. 주변의 바위 정원에는 검은방울새와 큰어치가 빠르게 날아다니고, 가족이 키우는 ‘애솔‘이라는 참매가 아버지의 새장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여동생이 앞장선 가운데 남매는 너무나 익숙한 이끼 덮인 돌들을 밟으며 작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 P10

알츠하이머병이나 자폐증과 같은 뇌 질환도 개개인이 가진 특성을 희석하고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조현병이 특히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환자의 감정이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현병의 증상은 어떤 감정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킨다. 환자들은 이미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격렬한 감정에 압도되는데, 그 모습은 그들을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겁먹게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한 가족에게 있어 조현병은 마치 가족의 기반이 아픈 구성원 쪽으로 영원히 기울어지는 것 같은 경험으로 다가온다.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조현병 환자가 존재한다면 그 가족 속 삶의 논리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은 형제자매들도 아픈 형제들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열두 명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전체와 개인을 분리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정신질환이 일상이 되면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했고 가족의 모습은 서서히 달라졌다. 정신질환은 가족이 하려는 무슨 일에든 영향을 주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린지, 마거릿, 존, 리처드, 마이클, 마크에게 갤빈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도 미쳐버리거나 다른 형제가 미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은 정신질환을 곁에 두고 성장했다.
망상, 환각이나 편집증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집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CIA가 그들을 찾고 있거나 침대 아래 악마가 있다고 믿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 안에 불안정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늘 ‘언제쯤 그것이 나를잡아먹을까?"라고 생각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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