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스라엘에 와서 재판을 기꺼이 받으려 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드러난 사실이라기보다는 증명된 것이었다. 물론 피고 측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피고가 납치되었고 따라서 "국제법에 저촉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로 데려왔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법정이 그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사나 재판관들이 그러한 납치가 ‘국가에 의한 행위‘였다는 점을 결코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점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국제법의 훼손이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두 국가에만 관계될 뿐 피고의 권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훼손은1960년 8월 3일에 있었던 "양국은 아르헨티나 국가의 기본적 권리를침해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행위로 인해 야기된 사건이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공동선언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법정은 이들 이스라엘인들이 기관원인지 민간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피고도 또 법정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 시민이었더라면 아르헨티나는 자신의 권리를 그렇게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거기서 가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는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그의 아르헨티나 신분증에는 남 티롤 지방에 있는 볼차노에서 1913년 5월 23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으로 거기서 살았다. 비록 그는 자신이 ‘독일 시민권자임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결코 망명자에게 해당하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만일 그렇게 했더라도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아르헨티나가 많이 알려진 나치스 범죄자들에게 망명을 사실상 허용하기는 했지만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정치범이 될 수 없다‘는 국제협약에 조인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로 인해 아이히만이 무국적상태가 되거나 또는 독일국적을 법적으로 박탈당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서독으로 하여금 해외거주 시민에 대해 제공하는 통상적 보호책에 대해 보류하게 만드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 P333
다른 말로 하면 수많은 법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납치가 빈번히 이루어진 체포의 한 양상이라는 인상을 결국 사람들이 갖게 된 수많은 전례들에 근거하여, 예루살렘 법정이 아이히만에대한 재판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아이히만이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이 비록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점을 잘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오직무국적 상태로서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몰살당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국적을 상실해야만 한 것이다. - P334
그가 이스라엘에 와서 제시한 두 번째 이유는 더 극적이었다. "1년 반쯤 전 [즉 1959년 봄]저는 독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으로부터, 어떤 죄책감과 같은 느낌이 독일 청년 일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책감 콤플렉스와 같은 사실이 제게는 말하자면 마치인간을 태운 우주선이 달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내면생활의 핵심 속의 한 점이 되었고, 그 주위로 많은 생각들이 결정체처럼 얽혔지요. 이것이 바로•••••• 수색대가 제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도•••••• 제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입니다. 제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독일의 젊은이들 사이에 있는 죄책감에 대한이 대화를 한 후에 저는 잠적할 권리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도 또한 제가 이 심문이 시작될 때 서면 진술서에서•••••• 제자신을 공개처형하라고 제안한 이유입니다. 저는 독일의 청년들로부터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제가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전쟁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들이 한 일들에 대해 결백하기 때문이죠." ‘지난 전쟁‘을 그는다른 맥락에서는 ‘독일제국에 강요된 전쟁‘이라고 여전히 부르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독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 질문을 그가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에 독일 법정이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다룰 때 필요한 ‘객관성‘을 아직도 상실한 채 있다고 대답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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