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 옛날로 돌아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백여 년 뒤의 세계에대해 말해준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텔레비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본다거나 스마트폰으로 지인들과 바로바로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말한다면?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믿지 못할 일은 백여 년 뒤의 사람들도 아사히신문에 실린 나쓰메 소세키의「문」을 매일 읽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2080년의 일들을 상상하는 나에게 미래의 누군가가 찾아와 그때에도 종이신문의 한 귀퉁이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릴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그게 가장 놀랄 만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먼 미래의 사람들도 하리라는 것. 소설을 읽고, 일기를 쓰고, 옆에서 걷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단골식당 앞에 줄을 서고, 보름달에 소원을 빌고.... 그렇게 이 세계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놀랄 만한 미래는, 그렇게 다가온다. - P13
그런데 따분하게 이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읽다가 어느 순간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그랬을까? 순전히 밟으면 삐걱대는 오래된 마루널처럼 몸이 아픈 어머니를 떠나보낸 내 감정이입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온갖 금지 사항만을 늘어놓던 이덕무가 어느 결엔가 이런 문장을 썼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와 숙부들이 다 살아 계실 때는 매우 우애가돈독하였다. 다섯 분 형제가 한 방에 모이시면 화기가 가득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이분들을 공경히 섬겨 아침저녁 식사를 반드시 손수 장만하시어 다섯 그릇의 밥과 다섯 그릇의 국을 반드시 큰상에 차려서 드렸다. 다섯 분은 빙 둘러앉아서 똑같이 식사를 드시는데 화기가 애애하였다. 나는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 지금은 네 분 숙부가 다 작고하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으며, 아버지만이 홀로 계시는데, 때로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 이덕무는 그저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 며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고만 말했다. 자기 마음은 하나도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 얘기만 하더니 다시 하지 마라‘는 식의 글이 이어진다. 이 문장에서 이덕무는 별말이 없었는데, 나는 그가 어머니와 네 분 숙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을 여의고 난 뒤집이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아버지와 둘이 앉아 옛일을 얘기하노라면 슬피 우시는 아버지 때문에 눈물도 보이지 못한 이덕무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이 책에 실린 말들이 사실은 이덕무의 말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손에 묻어도 빨아먹지 말아라, 얘야, 참외를 먹다가 남에게 줄 때는 꼭 칼로 이빨 자국을 깎아버리고 주어야 한다. - P33
정약용이 쓴 「선중씨先仲氏 정약전 묘비명」을 읽는데 내 눈에 문득 이런 구절이 들어왔다.
차마 내 아우로 하여금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며 나를 보러오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마땅히 우이보에 나가서기다려야 되지. 不忍使吾弟 涉重以見我 我當於牛耳堡待之
1801년 11월 21일 목포 쪽과 해남 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주막거리인 나주 율정점에 도착한 죄인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다음 날 아침 그곳에서 헤어져 각자 자기의 유배지로 떠났다. 이 일을 정약용은 「율정별栗亭別」이란 시에서‘로 이은 가게집, 새벽 등잔불이 푸르스름 꺼지려 해 / 잠자리에서 일어나샛별 바라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그리운 정 가슴에 품은 채묵묵히 두 사람 말을 잃어/ 억지로 말을 꺼내니 목이 메어 오열이 터지네‘라고 노래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14년이 지난 1814년 아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풀려나리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 떠나올 때만 해도 흑산도 입구인 우이도에 살았으니 우이도로 잘못 찾아간 아우가 한 번 더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할까봐 정약전은 고집을 피워 우이도로 다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3년을 더 아우를 기다리다가 죽었으니 아우 정약용이 그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그 묘비명에 ‘악한 놈들의 착하지 못함을 쌓아가던 게 이와 같았었다‘라고 쓰는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유배 16년 동안, 겨우 몇 권의 책만 낸 정약전. 그가 뭍이 아니라 아우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그 그리움을 잊으려고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고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사랑이 내리 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 P42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 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 P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