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허석의 얘기가 덜 슬프거나 덜 아름다웠다면 오히려 내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감동하거나 질투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따위의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거짓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변소 문이 보이거나 빨래가 들쭉날쭉하게 잔뜩 널려 있어야 ‘집‘이라고 느껴지며, 그렇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그냥 ‘건축물‘로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P204

이모가사온 ‘자유일기‘에는 페이지마다 맨 밑에 ‘오늘의 명언‘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불행한 날에 행복한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그 말이 다가와 가슴을찌른다. 힘없이 대문을 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오늘 이 우주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라고.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허석이 마루에 앉아 있다.
처음에는 놀랐고 그다음에는 내가 드디어 헛것을 보는가 싶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내가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실망이었다.
그가 다시 온 것이 반갑지 않을 뿐 아니라 실망스럽기까지 하다는 걸 깨닫고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럴 리가 없다. 불과 몇 초 전, 저 대문을 열고 들어서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 나는 나 자신을 주의깊게 들여다본다. 아무리 보아도나는 허석과의 예상치 않은 재회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까의 슬픔, 바로 거기에서 이별의 이미지가 완결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마치 팥쥐 역을 맡아 지금껏 열심히 연습했는데 갑자기 콩쥐로 배역이 바뀐 것처럼 나는 맥이 빠진다. 그렇게나 몰두해 있던 팥쥐의 감정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면서 콩쥐의 감정에마저 무덤덤해진다. 이별의 슬픔이 무의미해지자 사랑마저 시들해진다는 걸 나는 처음 깨닫는다. - P224

운명적이라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깨달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는 그것을 광진테라 아저씨 박광진씨를 통해서 알았다. - P248

아줌마는섧게 울었다. 그것은 소중한 재성이를 다시 만나게 된 기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기 신세에 대한 설움 탓이기도 했다.
지난봄 제재소집 할머니가 죽었을 때 보니 가장 서럽게 우는 것은 이남 삼녀 중에 제일 못살고 고생 많이 한다는 작은딸이었다. 그 작은딸이 어머니의 영정 앞에 몸부림을 치면서 우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해서이기도 하지만, 마음놓고 울 기회를 얻었기때문에 그 공개적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한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울음이 그칠 만하면 제 신세에 대한 새로운 설움이 떠올라 "아이고오!" 하면서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곤 했으므로 마당에 있던남자들은 그래도 그 딸이 제일 효녀라고 말들 하며 화투패를 돌렸다. 부엌에 있던 여자들은 딸의 심정을 짐작할 만큼 비슷한 신세이거나 인생의 이면에 대해 남자보다는 더 관찰력이 있었으므로그 딸의 설움이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추모의 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저 작은딸은 요새도 살기가 그렇게 힘든 모양이지" 하면서 상에 젓가락을 놓았다. 광진테라 아줌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연상한 것은 바로 제재소집 작은딸이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보이던 그 흐느낌이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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