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말이 옳았다. 곰곰이 자신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실제로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단지 어린애에게 부과된 금기에 불편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금기에 대한 불편은 몇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나는남자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도 불편을 겪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드러내놓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부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저 바지 속에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의식된다는 사실이 크나큰 불편이었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남자들의 성기에 내포된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바지 안에 감춰져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나에게는 내가 그것의 존재함(존재 자체가아니라)을 의식하는 것이 지나치게 의식되었다. 혹시 부주의한 내눈길이 이성의 만류를 배반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성기가 있는 부분으로 향해지지나 않을까 의식했으며, 그래서 번번이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려고 하다보면 또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이 견딜 수없이 의식되었다.
동네 아저씨나 가겟집 총각들은 물론 교장 선생. 사진 속의 대통령, 심지어는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예수의 거룩한 모습을 볼 때마저도 나는 ‘저 사람도 그것을 갖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에는 어떡해야 남자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남들의 오해를 받을까봐 남자 허리띠의 버클조차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 P125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사랑이다.
할머니의 사랑 중에 고운 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라면 이모는 물론 미운 정 쪽이다. 이모는 고운 정을 갖기는 틀렸기 때문에 할머니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러나 나는 미운 정을 얻기 위해 할머니에게 함부로 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없다.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