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보니 상실감은 더 컸다. TV 화면에 킥복싱이 커져 있는일도 없었고, 현판 바깥에서 운동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일도 없었고, 계단 꼭대기에서 엄마한테 뭐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쳐 묻는 소리도없었다. 덩치가 나만 한 사람이 나를 ‘기인‘이라고 부르거나 "아빠, 셔츠멋진데요. 혹시 베트남 난민에게서 뺏어온 건 아니죠?" 하고 묻는 일도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 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큰아이가 여기 없는 것 같았어도 사실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이곳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나는 차 뒷좌석에서 발견한 둘둘 말린 스웨터나 아무데나 붙여놓은 씹다만 껌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눈물이 났다. 하지만 아내는 그마저도 필요 없이 마냥 눈물을 흘렸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멍청하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농구공이나 큰아이가 달리기 대회에서 탄 트로피, 오래 전의 명절 때 찍은 사진 등을 쳐다보는, 그리고 그 물건들을 통해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는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아들이 여기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예전의 그 아이도 영영 가고 없다는 갑작스런 깨달음이었다. 아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삶은 계속되며, 아이들은 자라서 집을 떠나기 마련이다. 아직 이것을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내 말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이들이 집을 떠날 날은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보다 빨리 온다.
그러므로 나도 이쯤에서 펜을 놓고 집 앞 잔디밭에서 막내아이와 야구를 해야겠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1이슈 발치하 미국학 151 - P151

지금은 고전이 된 <북미대륙 중동부 나무들의 자연사)에서 피티는 좋게 말해야 학자답게 썼다고밖에 할 수 없는 문체로 434쪽을 단조롭게 기술하고 있지만("오크 나무는 우람하고 묵직한 나무로 나무껍질에는 기다란 홈이 파여 있으며, 잔가지는 단면이 대개 오각형으로 되어 있고 그주변을 다섯 개의 잎사귀가 둘러싸고 있다" 같은 표현이 대부분이다), 뉴잉글랜드의 사탕단풍과 그 선명한 빛깔에 대한 설명에 이르면 마치 누군가가 그의 코코아 잔을 뒤엎기라도 한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는 숨 가쁘게 사탕단풍의 빛깔에 대한 비유를 늘어놓는다.
"대군의 함성 같고•••••••, 불의 혀 같고•••••• 교향곡의 바다의 물마루를 타넘는, 그리고 그 울부짖는 듯한 노랫소리로 오케스트라의 모든 계산된 불협화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찬 선율 같다."
그의 아내가 옆에서 "알았어요. 도널드. 이제 약 드실 시간이에요"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은가.
피티는 열띤 어조로 그렇게 두 단락에 걸쳐 사탕단풍의 색깔을 묘사하다가 돌연 축 처진 엽액)과 비늘에 싸인 잎눈, 하늘거리는 잔가지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킬링턴봉 정상의 초자연적으로 맑은 공기 속에서 시야가 온통 가을빛으로 물든것을 보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 팔을 벌린 채 목청껏 존 덴버의 노래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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