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 어깨를 후려치며 해마다 기념식을 치를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각자 다른 인생길을 향하기 시작했고, 에이드리언이라는 공동의 기억만으로 결속을 다질 수는 없었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을 만한 구석이별로 없었기에 그의 자살 사건이 더 수월하게 정리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평생토록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그의 죽음은 - 케임브리지 신문이 기계적으로 주장했듯이-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빠르다 싶을 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 시간과 역사의 틈새 속으로 사라져갔다. - P97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이 되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마련이다. 안 그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덕을 쌓은 만큼상을 주는 게 인생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젊었을 때는 노년에 겪을지 모를 고통과 황폐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인, 이혼을 한, 상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자식들도 커서 품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입지가 사라지고 욕망이, 이성을 끄는 매력이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 세상 어떤 동반자를 구한다 해도 홀로 맞설 수밖에 없는 죽음까지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 말로, 소리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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