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과 그들의 허벅지라니,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나는한 친구에게 이렇게 투덜댔다. 내가 욕구라는 주제에 다시 몰두하게 될 때까지, 나아가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라는 바로 그 질문을 여성의 권력, 에너지, 가치에 관한 더 광범위한 질문들과, 만약 만 한다면‘이 걸쳐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 전체와 연결 짓게 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체중에 대한 강박에 빠져 보낸 몇 년 동안 나는 더 넓은 세계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대안적 비전들을 고민하지 않았으며, 체중 강박이 초래하는 무자비하고 성가신 괴로움이 온갖참상과 불의로 가득한 더 큰 그림을 얼마나 깊고 완벽하게 가려버릴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테러 공격의 여파 속에서여러 감정이 닥쳐왔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더 씁쓸하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감정 하나는 나 자신의 안일함, 이 세계의 다른 지역들이 미국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의 깊이와 그 증오를 키우는 데 우리가 한 역할에 대한 나의 무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 여자들을 미치게 몰아가고 남자들을 살인적 분노로 몰아가는 가난과 절망에 대한 나의 너무나도 안이한 무관심에 대한 깊은 창피함이었다. 그 창피함은 이렇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부대들을 후에 탈레반의 씨앗이 될 거센 혼란 속에 남겨둔 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1980년대 말, 내가 하고 있던 걱정은 내 청바지가 너무 꼭 끼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나에겐 여자들과 그들의 허벅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거기 신경 쓰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신경이 파괴적일 정도로 여자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 P298
나는 보트를 부두에 대고 넓고 푸른 리본 같은 강물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거울 조각을 박아놓은 듯 매끈한 유리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잔물결을 만들면서 햇빛이 뿌려놓은 다이아몬드 같은 광채를 되비추며 반짝거렸다. 나는 그 젊은이의 고양이와 담요 더미를 생각했고, 스컬이 나에게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컬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다시 소개해주고, 몸을 기쁨의 원천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고 욕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가슴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힘겨운 작업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소비주의에 여전히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엄격하게 구축된 기업문화와 정치 문화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깊이 새겨진 가정들에 정면으로 충돌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 비전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아 잘 논의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글래머>나 <레드북>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전일 수있으며, 외현화하는 문화의 요란한 소음 때문에 분별해내기가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분명히 만들어진다. 비록 그 비전이 넓은 사회적 의미에서는 정치적이지 않을 수있지만, 무엇이 효과 있고 무엇이 적합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는 일에서, 즉 개인적 정치에서는 분명 변화를 일으킨다. 어느 교회 지하실에 모여 허기와 포만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던 한 무리의 여자들, 굶기를 재정의한 패션모델, 상담실에 앉아 감각성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닦아가는 심리 치료사와 내담자, 홀로 강물 위에서 스컬을 하며 강함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한 사람. 공적인 전쟁터들이 오늘날에는 사적인 전쟁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두 전투에 적용되는 역학은 대체로 동일하다. 무엇이든 당신을 몸과, 자신과 다른 여자들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 있다. 무엇이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곳을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P310
뭔가가 빠져 있어. 이 말은 그나마 내가 그 느낌을 설명하는데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이것은 놓쳐버렸거나 좌절된 관계들에 대한, 한때 무언가 사랑스럽고 견고한 것이 존재했던 자리에 남겨진 거대한 공동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이것이 그 허기의 대양, 욕구의 바다 바닥에 깔린 거친 모래알이라고, 그저 인간이기에 느끼는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그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는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추구와 갈망의 조건인 허기의 경험과, 일시적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구와 새로운 갈망에 밀려나고 마는 채워짐의 경험 사이에 감도는 긴장을 처음부터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일단 충족된 목표는 언제나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진다. - P320
라캉의 관점에서 필요는 순전한 생존에 필요한 요건들- 음식, 주거지, 온기, 움직일 자유, 타인들과의 최소한의 접촉과 관련된다. 필요는 선천적이고 본능적이며, 필요의 충족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상-어머니의 가슴, 부드러운 담요, 깨끗한 기저귀 이 필요하다. 반면에 요구는 아이가 더욱 의식적으로 관계의 세계로 들어가 언어 사용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할때 발생하며, 이런 변화는 필요한 것과 그것을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을 불변하게 연결함으로써 필요의 본질을 바꾸어놓는다. 이제 허기는 관계에서도 육체적으로도 훨씬 더많은 의미를 품은 경험이 되고 (그리고 계속 그런 경험으로 남고)그 허기에 반응하거나 반응하지 않은 사람과 영원히 결부된다. 언어의 상징적 질서 체계 안에서, 음식과 온기와 거주지에대한 아이의 기본적인 생존상의 필요는 그 본능적 근원에서 분리되어 여러 층위의 사회적 의미와 대인 관계에 얽힌 의미를 띠게 된다. 나는 배가 고프다는 말은 나는 배가 고프고 내 어머니가 반응해준(반응해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나를 먹여줘는 음식에 대한 육체적 필요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줘, 나를 보살펴줘, 세상이 안전한 곳임을 내게 보여줘, 나의 의지에 귀 기울여줘라는 의미까지 표현하기 시작한다. - P326
내가 아는 여자들 중 가장 슬픈 축에 드는 이들, 격렬한 슬픔과 절망에 유난히 잘 사로잡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은자기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손상되거나 어머니와 거리감이 있었거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기미가 배어 있었던 이들, 자기 어머니가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성장한 이들이었다. 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심지어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고 기특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나는 우리 사이에 몇 가지 배선이 초기부터 어긋났고 중추적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어머니와 나의 언니 오빠 사이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아버지와 더 비슷했고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더 잘 맞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내가 매우 결정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의원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얼마나 확실한지 혹은 안정적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에는 언니와 어머니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진정으로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듯 약간이지만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수년간 나는 어머니와함께 있을 때면 내향적이고 화가 나 있고 어두운, 마치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집에 들어갔다가는어떤 대립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따라 들어오기라도한듯, 5분 만에 돌아 나오고는 했다. 분노는 식별하기가 쉽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이를 악물게되고 피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고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근원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나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씁쓸한 분노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된것, 혹은 다가가게 된 것이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만난 그 8월오후 같은 날들을 돌이켜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춰본 적도없었던 그것은 그 분노 아래 깊이 흐르고 있던 슬픔이었고, 너무나 격렬해서 평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는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소리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울부짖음으로, 더없이 길고 더없이 외로운 곡소리로 나왔을 것이다. - P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