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민자 집단을 탓하고, 빈자와 고령자에게 등을 돌리는 행태가 2020년에도 다시 등장했다. 심지어 일부 목사들까지 그와 같은 구태를 되풀이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람을 구별하지 않을뿐더러 아무 의도도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않는데, 우리는 왜 차별해야 할까? 분명히 밝혀두지만, 안전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불행에 일조하는 셈이다. 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병에 걸리는 개인이나 그 개인이 우연히 속한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다. 성공한 공중보건 운동은 늘 그런 원칙을 중심에 두었다. - P256
물론 바이러스는 의지가 없는 존재이니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사회적·경제적 요인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해진다. 전염병이 돌면 기존에 있던 사회적 구분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전에 없던 구분이 생겨나기도 한다. 병자와 건강한자가 나뉜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깨끗한 자와 오염된 자가 나뉘고, 떳떳한 자와 비난받을 자가 갈리면서 그 사이의 골이 깊어진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원론적 사고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은 선과 악, 우리와 타인으로 세상을 나눈다. - P262
어린이가 SARS-2에 비교적 잘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행동적·환경적 차이(가령 흡연과 공해에 대한 장기적 노출이 덜한 점)도 있지만, 유력한 몇 가지 생물학 가설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는 통로로 이용하는 ACE2 수용체의 차이,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면역체계의 차이, 백신 또는 다른 바이러스 노출 경험의 차이 등과도 관련이 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ACE2 수용체는 나이가 들수록 적게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나, ACE2 수용체의 풍부성 또는 수용체 활동의 차이로 인해 어린이의 SARS-2 면역력이 역설적으로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령,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등 코로나19 감염 위험 요인 몇 가지는 모두 ACE2 수용체 결핍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폐내 ACE2 수용체의 정확한 분포 상태도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 역시 원인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ACE2 수용체의 생리적 역할을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나이에 따라 본래 달라지는 면역체계의 특성을 지적하는 가설들도 있다. 예컨대 어린이의 면역은 적응적인 특성이 강하고(즉 경험하지 못한 병원체를 막는 데 최적화되어 있고), 어른의 면역은 기억에 의존하는 특성이 강하다(즉 이전에 경험한 병원체를 대비하는 데 맞춰져 있다). 어린이의 면역세포가 어른의 면역세포보다 효율적이어서 SARS-2 등의 병원체에 대해 항체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또 어린이의 면역체계는 아직 미성숙하여 사이토카인 폭풍을 일으키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현상으로, 코로나19의 병세와 사망률에 큰영향을 미친다. 또 한 가지 설은, 소아기에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예방접종이SARS-2에 대해서도 ‘교차면역cross-immunity‘을 형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핵 백신인 BCG (현재 미국에서는 사용되지 않음)는 여러 병원체를 막아주는 비특이적 효과가 있어 신종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P266
모든 감염병이 그렇듯 코로나바이러스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피해를 초래하는 정도가 다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극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앞서 뉴욕시의 퀸스 중부 등 저소득 지역과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는 감염률이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또 뉴욕시의 부자들은 확산 중심지를 피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 원격근무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저소득 직업은 대개 원격근무가 불가능하다. 요리사, 간호조무사, 마트 계산원, 건설 노동자, 건물 관리인, 보육교사, 트럭운전사는 재택근무를 할 방법이 없다.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지 않은 이상 감염 위험이 높아진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게다가 건강보험에 제대로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아파도 의료 접근이 어렵고 병가를 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몸이 안 좋아도 병원에 가지 않고 계속 출근하는 노동자가 많았고, 아픈 채로 일하는 근무자는 유행을 더욱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전염성이 강한 감염병은 극명한 불평등과 보편적 의료보장의 부재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어 있다. - P274
전쟁이나 기근 또는 허리케인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 때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지만, 유행병은 집단적 재해이면서도 개별적으로 겪어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우리를 물리적으로 갈라놓는다. 과거 수백 년간 유행병이 돌 때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이웃과 친구들을 피했고, 심지어 홀로 죽기도 했다. 또 앞서 살펴봤듯이 유행병은 우리의 어두운 성향을 자극하여 공포, 분노, 비난을 부추길수 있다. 하지만 유행병은 함께 뭉칠 기회를, 아니 반드시 뭉쳐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기도 한다. 유행병은 우리 모두의 취약성과 인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다른 집단적 재해처럼 유행병에 맞설 때도 연대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인류는 유익한 특성들을 발전시켜왔다. 바로 사랑, 협동, 교육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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