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건물들 틈새로 마지막 빛살을 쏘아 보내고있었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그런 금이 난 곳으로만 내뿜어져 발산되는 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술이나 아편 같은 거라도 없으면 다들 어떻게 버티겠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걸." 옥희는 감기처럼 흔해진 증상이 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그냥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이제 목매달아 죽자고 결심하는 것 같아."
정호가 걸음을 멈추고 옥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다소 거친 어조였다. 옥희는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정호가 다시 걷기 시작하며 이렇게 덧붙이자 그런 마음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난 살면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이 수없이 많았어. 그럴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그 죽음이라는 게 몸으로 느껴지더라. 가끔은 묵직한 이불 같지. 배고픔에 시달려 몸속에 남아 있는 힘이라곤 단 한 줌도 없을 때 말이야. 또 가끔은 내내 구석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덤벼드는 사나운 개 같기도 해." 정호는 폭발하듯 빛을토해내며 스러져가는 마지막 햇살에 눈을 가늘게 떴다. - P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