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그는 곧 이곳의 주인인 은실이 그러한 위치와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은실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훈계만 아득히 읊어대는 신비한 존재도 아니었다. 나이 많은 선배 기생들에게 불손하게 행동한 어린 견습생들을 따끔하게 처벌하는가 하면, 공연한 입소문이나 퍼뜨리고 기방에 내야 할 수입을 몰래 숨기는 기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추궁했다. 월경혈로 얼룩진 이부자리, 도둑맞은 비녀, 누군가 꾸준히 한두 숟가락씩 훔쳐 먹어 비어가는 꿀단지까지, 은실의 주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사소하고 잡스러운 문제에 개입하여 온갖 상황을 정리하면서도 그는 17세기의 그림 속에 묘사된 백옥 같은 미인처럼 은은한 태도를 유지했고, 언제나 무심하고 공정한 모습이었다. 타고난 자연적 성향과 의식적으로 취하는 품행 양쪽에서 은실이 아주 오래된 골동품을 연상시키는 그만의 우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을, 옥희는 그의 모든 측면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과 가발을 함께 엮어 머리에 얹은 커다란 왕관 형태의 가체도, 다른 여자들이 썼다면 너무 구식이거나 살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은실에게는 그런 모습이 곧 흘러간 과거의 낭만적인 향수와 시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