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작가 윌리엄 버로스가 묘사했듯 이 약물은 자극성은 코카인만큼 약하지만 효능은 코데인의 두 배로 헤로인과 맞먹기에 미국 의사들은 괴링을 법정에 세우기 전에 의존증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합군에 체포될 당시 괴링이 가지고 있던여행 가방에는 2만 회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남아 있던 생산분의 사실상 전부였다. 그의 중독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독일 국방군 거의 전원이 페르비틴을 지급받았으니 말이다. 이 메스암페타민 알약을 복용한 병사들은 몇 주일 내리잠도 자지 않은 채 광적인 흥분과 악몽 같은 혼수를 오가며 정신 착란 상태에서 싸웠다. 과다 복용한 병사 중 상당수는 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사위가 쥐죽은듯 고요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의미해진다. 마치 내가 조종하는항공기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독일 공군의 한 조종사가 몇 년 뒤 쓴 이 문장은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 아니라 지복의 환상을 목격하는 고요한 환희를 회상하는 듯하다. - P9
독일군 빌리 지베르트는 이렇게 썼다. "기상 통보관 말이 맞았다.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풀이 난 곳은 선명한 초록색이었다. 이런 날엔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이 아니라 소풍을 가야 했다." 그는 그날 아침 이프르에서 독일이 살포한 염소 가스 6000통을 개봉한 병사 중 한 명이었다. "난데없이 프랑스군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규모로 소총과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모든 야포, 모든 기관총, 모든 소총이 불을 뿜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었다. 탄알이 우리 머리 위로 빗발치듯 날아가는 광경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가스를 멈출순 없었다. 바람이 가스를 프랑스 전선 쪽으로 계속 밀어갔다. 소들이 울부짖고 말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랑스군은 계속 사격했다. 자신들이 무엇에 대고 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15분쯤 지나자 포성이 잦아들었다. 반시간 뒤에는 산발적 총성만 들렸다. 그러다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얼마 뒤 시야가 걷혔고 우리는 빈 가스통을 지나쳐 걸어갔다. 우리가 본 것은 총체적 죽음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짐승도 굴에서 나와 죽었다. 사방에 토끼, 두더지, 쥐, 생쥐가 죽어 있었다. 공기 중에는 여전히 가스 냄새가 감돌았다. 남은 덤불 몇 그루에도 냄새가 걸려 있었다. 프랑스 전선에 당도하자 참호는 비어 있었지만 800미터 앞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믿을 수없었다. 영국인도 몇 명 보였다. 병사들이 숨을 쉬려고 얼굴과 목을 손톱으로 할퀸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총을쏜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마구간에 있던 말, 소, 닭, 모든 것이 모조리 죽어 있었다. 모든 것, 심지어 곤충까지도 죽어 있었다." - P31
새벽까지 계속된 파티가 끝나갈 무렵 그의 아내는 정원에 나가 신발을벗고는 남편에게 지급된 리볼버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그녀는 위층에서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열세 살 아들의 품에서 피 흘리며 숨을 거뒀다. 이튿날 프리츠 하버는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채로 동부 전선의 가스 공격을 감독하러 떠나야 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가스 살포의 효율을 높이는 기법을 가다듬었으며 그러는 내내 아내의 혼령에시달렸다. "며칠에 한 번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나가있는 게 도움이 된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이며 유일한 임무는 참호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서 본부에 돌아와 전화기에 붙들려 있다보면 그 가련한 여인이 내게 했던 말이 심장 속에서 울려퍼진다. 기진맥진하여 환각이 보일 땐 명령서와 전보 사이로 그녀의 머리가 나타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경험이다." 1918년 휴전 이후 연합군은 프리츠 하버를 전쟁 범죄자로규정했다. 자신들도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못지않게 가스를 쓰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주제에 말이다. 그는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자리잡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전의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발견은 수십 년 뒤 인류의 운명을 바꿀 터였다. 1907년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는 20세기 초에 전례 없는 세계 대기근을 몰고 올 뻔한비료 부족 사태와 맞섰다. 하버가 아니었다면 구아노와 초석같은 천연 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억 명이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 P34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 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 P42
그럼에도 이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의 아수라장에서도 특이점은 얼룩처럼 그의 마음속에 퍼져 참호의지옥도를 덮었다. 진흙 구덩이에 파묻힌 죽은 말의 눈에서, 동료 병사의 총상에서, 흉측한 가스 마스크의 뿌연 렌즈에 서 그는 특이점을 보았다. 그의 상상력은 자신이 발견한 결과에 매혹되었다. 만에 하나 특이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종말까지 지속될 것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았다. 이상적 조건이 갖춰지면 그 항성은 영생하는 천체가 되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으면서 영영 그대로 머물러 있을 터였다. 그것은 여느 천체와 달리 어떤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이중으로 탈출이 불가능했다. 특이점은 기묘한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 시간의 양끝에 자리잡았다. 특이점으로부터 가장 먼 과거로 달아나거나 가장 먼 미래로 탈출하더라도 다시 한번 특이점을 마주칠 뿐이었다. 슈바르츠 실트는자신의 발견을 아인슈타인에게 알리기로 한 바로 그날 러시아에서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기 시작한 이상한 것에 대해 불평한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나의 모든 생각에 어둠을 드리워. 그건 형태나 차원이 없는 공허, 볼 순 없지만 온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자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는 그의 몸을 침범했다. - P49
쿠란트는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다. 쿠란트가 의사들에게진료받은 뒤 호송대에 합류하여 베를린으로 떠나기 직전 슈바르츠실트는 평생 쿠란트를 괴롭힐 질문을 던졌다. 당시에는 죽어가는 군인의 헛소리요, 피로와 절망에 시달린 슈바르츠실트의 정신을 스멀스멀 사로잡은 광기의 산물인 줄 알았지만 슈바르츠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슈바르츠실트는 그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조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쿠란트는 그를 달래려 애썼다. 슈바르츠실트가 두려워하는 종말의 징조는 전혀 보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빠져든 전쟁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리 없다고 말했다. 인간 영혼은 어떤 수학적 수수께끼보다도 큰 신비이며 물리학의 발견을 정신처럼 방대한 영역에 투사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상기시켰다. 하지만 슈바르츠실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검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올라와온 세상을 집어삼킬 거라고 횡설수설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탄식했다. 특이점은 어떤 경고도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돌아올 수 없는 지점, 한번 넘으면 무지막지하게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계에는 어떤 표시도 경계도 없다고, 그 선을 넘는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모든 가능한 궤적이 돌이킬 수 없이 특이점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슈바르츠실트가 눈에 핏발이 선 채 물었다. 그 문턱의 성질이 이렇다면 우리가 이미 특이점에 들어섰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쿠란트는 독일로 돌아갔다. 슈바르츠실트는 그날 오후 사망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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