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잣나무(백송의 발상지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 1625년에 이 나무의 어린나무가 채근되어 일본 본토로 옮겨졌다. 그곳에서더 단단한 곰솔black pine (흑송)의 뿌리에 접붙여져 조금씩 분재로 다듬어졌다.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이 나무는 콜로라도에서 내게 그늘을 드리운 폰데로사소나무처럼 20미터까지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서 성장을 억제한 탓에 이 나무의 도기 화분 옆에 서면 그늘이 무릎 높이 위로는 올라오지 않는다. 가지와 뿌리를 쳐주면 나무가 왜소해질 뿐 아니라 줄기도 곧고 바늘잎 우듬지가 균형을 이룬 형태로 자란다. 게다가 여느 분재와 마찬가지로 가지에 철망을 둘러 인간의 눈에 보기 좋은 형태를 이끌어냈다. 폰데로사소나무의 뿌리와 균류 그물망은 뿌리 끝이 닿지 않는 흙속 깊숙한 곳에서 물을 끌어당길 수 있다. 접붙인 섬잣나무는 여느 분재와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근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이 유심히 살피며 매일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줘야 한다. 또한1~2년에 한 번씩 오래된 뿌리를 잘라내어, 넓고 얕은 화분의 제한된 공간을 어린 잔뿌리가 고루 채우도록 해야 한다. 분재 화분에서도 공생 균류가 흙에 서식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노동이 균류의 일을 대부분 대신한다. - P314
이것은 야마키 섬잣나무라는 원자적 나무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한 가지 결론인지도 모른다. 식물이 노예가 되었다가 폭격을 맞는 이야기. 하지만 야마키 섬잣나무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이런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분재는 생명 그물망을 벗어나지 않는다. 올리브 농장에서처럼, 분재는 다른 곳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사실 인간의 삶과 나무의 삶은 언제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많은 나무에서 그물망의 주된 구성 요소는 세균, 균류, 곤충, 새 같은 인간 아닌 종이다. 올리브나무와 분재는 인간을 한가운데로 보내어우리로 하여금 지속적 관계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생명이 위축되고 때로는 끝난다. 레반트에서는 관계가 끊어지면 기름을 내던 나무들이 쇠락하거나 죽으며 나무에 의존하는 경제와 문화도 같은 운명을 겪는다. 분재에서는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단절된 나무는 금세 죽는다. 수 세기에 걸친 나무의 생장과 인간의 노고로 인한 결실도 함께 사라진다. 이 손실이 식량 사정과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올리브 농장에 비하면 크지 않지만 문화에는 깊은 타격을 가한다. - P323
부副큐레이터 애린 패커드Aarin Packard는 분재의 흙과 잔가지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내게 말했다. 초심자는 자신이 나무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줄기와 가지에 원하는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움이 쌓이면서 형태란 생명들의 예측할 수 없는 만남에서 생기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급 분재가는 15년 이후의 형태 변화까지 내다볼 수 있을 겁니다. 존 나카John Naka 같은 대가들은 반세기까지도 볼 수 있겠죠.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미래는, 전개되는 텔로스는 어떤 자아에도, 나무의 씨앗이나 인간의 마음에도 담겨 있지 않다. 그 근원과 재료는 살아있는 관계의 가닥들에 담겨 있다. 분재는 원예라는 거울을 통해 나무의 본성을 비춘다. 나무는 공생명共生命, 즉 다수의 대화로 이루어진 존재다. - P325
나눌 수 없는 원자라는 개념은 환각임이 드러났다. 이 환각은 히로시마 상공 600미터에서 산산조각 났다. 개별성의 가면이 부서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절에서는 돌에 새겨진 부처의얼굴이 녹았다. 1964년에 원폭 생존자들이 홍법대사의 소나무 통나무에서 불을 가져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기념비와 공동묘지 가운데 있는 가스불을 점화했다. 나무로 종을 치자 미야지마의 숲 신사에서 들은 소리가났다. 야마키 가문은 원자를 넘어 예술을, 생명의 통합을 이뤄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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