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움직임은 나무의 일부가 된다. 도시는 콩배나무 안에 있다. 콩배나무는 진동을 받아 흔들리면 뿌리를 더 뻗어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뿌리는 흔들림과 구부림에 저항할 수 있도록 뻣뻣해진다. 섬유소와 목질소 가닥이 증가하여 길이 방향의 힘도 커진다. 따라서 도시의 나무는 시골의 사촌보다 더 단단하게 땅을 움켜쥔다. 나무줄기는 움직임에 반응하여 둘레가 굵어진다. 내부에서는 목질부를 이루는 세포들이 더 촘촘하게 자라 벽을 강화한다.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금언은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의미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관계 학교에서는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경계선을 지우고는 나의 일부가 된다. 나무는 몸을 구부려 바깥에 있던 것을 안으로 품는다. 식물의 삶, 땅의 진동, 바람의 하품이 나누는 대화가 몸을 얻으면 나무가 된다. - P246
도시의 소리는 그 밖의 새로운 감각과 결합하여 이곳의 많은 종을 혼란에 빠뜨린다. 전자제품과 무선 신호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아지랑이는 시골보다는 전선과 송신기로 가득한 도시에서 더 강한데,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새의 나침판을 교란한다. 새들은 전파의 안개 속에서 갈 곳을 모른다. 경유 매연은 꽃향기의 화학물질과 결합하고 이를 왜곡하여 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도시의 향에 둘러싸인 나방은 냄새로 길을 찾지 못한다. 나뭇잎에 사는 미생물은 서로를 찾고 말을 걸지 못하는 듯하다. 도시에서는 미생물의 다양성이 매우 낮다. 이 새로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은 소수의 몇 중에 불과하다. 콩배나무도 그중 하나다. 비결은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다. 밤 10시가 되자 콩배나무 꼭대기의 꽃들이 보름달 달빛을 반사하여 은빛으로 빛난다. 빛은 직진하지 않는다. 꽃잎이 받아들이는 것은 도시 협곡의 창문에서 반사된 달빛이다. 달 또한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빛은 꽃에서 꽃으로 흘러내린다. 아래쪽에서는 달빛이 뉴스가판대 네온등의 붉은 기둥과 뒤섞인 채 호박색 가게 정문을 비춘다. 해에서 석탄으로 전구로, 꽃잎으로 햇빛은 느릿느릿 지상을 활보하며 브로드웨이 대로에 아치를 드리운다. 남동쪽으로 몇 블록 가면 골목길이 온통 은은하게 빛나는 콩배나무 꽃터널이다. 운수평 (중국 청대의 화가 옮긴이)이 달빛 머금은 꽃을 그리다 이곳에도 붓질을 한 듯하다. 아침이면 17세기 중국의 이미지는 자취를 감춘다. 맥주 운반 트럭이 정차한다. 연소실에서 폭발이 일어나 피스톤 로드가 위아래로 움직이면 흰 배꽃 1만 송이가 흔들린다. - P250
연안도沿岸島의 이름이 마나하타에서 니우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뉴욕으로 바뀌는 동안 인간 아닌 생물의 다양성이 급감했다. 도시에서 생물이 감소하는 이러한 패턴이 전 세계에서 되풀이되었다. 주변 시골에 서식하는 토착종 조류 중에서 도시에 깃들어 사는 것은 평균 8퍼센트에 불과하다. 식물은 상황이 조금 나아서, 토착종의 4분의 1가량이 도시에서도 서식한다. 토착종의 다양성이 낮아지는 것과 더불어 균질화 현상이 일어난다. 전 세계 도시의 96퍼센트에 새포아풀Poa annua자란다. 유럽이 원산지로 키가 작은 새포아풀은 여러 풀이 교잡하여 진화했다. 이처럼 계통이 섞인 탓에 새포아풀은 부모가 많으며, 유전적 기억 덕에 도시에 적응하여 인류의 이동을 따라 전 세계 도시에 잽싸게 퍼졌다. 조류 공동체도 몇몇 코스모폴리탄 종이 지배한다. 콩배나무에서 본 비둘기, 찌르레기, 참새는 전 세계 도시의 80퍼센트 이상에서도 관찰된다. 이런 패턴을 보면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도시를 반대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도시는 지표면의 3퍼센트를 차지하고서 인구의 절반을 수용한다. 이러한 인구 밀집은 효율적이다. 뉴욕 시민이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은 미국민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뉴욕은 애틀랜타나 피닉스처럼 확장 중인 도시와 달리 교통수단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지난 30년 동안 제자리다. 덴버는 잔디밭이 아주 많은데도, 콜로라도 주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덴버 시민의 물 소비량은 주 공급량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도시 인구가 모두 시골로 이주하면 토착종 조류와 식물은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숲이 벌목되고 개울이 흙탕물로 바뀌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을 것이다. 이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도시 거주민이 교외와 준교외로 피신하면서 숲이 개간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한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도시 지역에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전 세계적 패턴을 개탄하기보다는, 빽빽한 도시 덕분에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증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254
이곳에서는 여러 공동체가 한 장소에 존재한다. 날, 철, 달의 시간이 장소를 나눈다. 오전 7시 30분에는 통근자들, 오후 2시 30분에는 유모차들, 한밤중에는 기침 환자와 담배꽁초 줍는 사람들, 일요일 아침에는 회당에 가는 유대교도들, 토요일 밤에는 취객들, 여름 새벽에는 조깅하는 사람들, 겨울 오후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사회적 토양의 각 층에서 사람들이 뒤섞인다. 사회적·경제적 계층의 장벽을 넘어. 내 시골 고향에 장이 서면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잡담하고 눈빛을 교환하고 상대방을 나무 아래에 데려가 낮은 목소리로 심각한 얘기를 하고 웃고 울고 끌어안고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수천 명이 지나치는 와중에 사회망의 이러한 발현을 알아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은 주변의 움직임에 가려 흐릿해진다. 처음에 익명성처럼 보이던 것은 알고보니 수많은 공동체의 공존이었다. 나는 거리의 소음을 방향 잃은 원자들의 충돌로 착각했다. 내가들은 것은 관계의 팽팽한 끈 수천 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였다. 마을장날이 떠들썩하기야 하겠지만, 이 소음을 만들어내는 그물망 개수에는 한계가 있다.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도 높다. 장터에서는 장애인의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는 고장나고 집은 저 아래 먼지투성이 길가에 있고 말동무라고는 시커먼 지빠귀뿐인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간 데 없다. 시골은 빈민과 환자를, 도시가 못 하는 방식으로 숨긴다. - P275
올리브나무
예루살렘 31°46‘54.6" N. 35°13‘49.0" E
고양이 세 마리 - 얼룩이, 노랑이, 커다란 검둥이 - 가 올리브나무 아래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야옹거리면서 서로 때리고 잘 다져진 흙 위를 뒹군다. 알 악사 사원의 금요 기도회는 몇 시간 전에 끝난 터라. 예루살렘 옛 성벽의 다마스쿠스 성문으로 빠져나오는 인파가 수천명에서 수십 명으로 줄었다. 올리브나무를 둘러싼 낮은 벽 아래쪽 광장에서 노점상들이 고함을 지른다. 신발, 오이, 오디, 허리띠, 자두, 커피머신 등이 든 상자가 주 통행로 주변을 덮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군중의 의복이나 말소리에 묻힐 일이 없기에, 상인들의 고함 소리는 성문의 높은 돌벽에서 부딪혀 메아리친다. "아샤라, 아샤라, ‘열‘ 냥이요!‘ 군인 몇 명이 손가락을 총열에 올려둔 채 광장 주변에 서 있지만, 이날 오후에 경비를 서던 검은색 복장의 보안군 수십 명은 떠났다. 그들의 무장 트럭과 눈가리개 쓴 말도 막사로 돌아갔다. 해가 지평선에접근할 때 깨어난 서풍이 열기와 먼지를 가라앉힌다. 올리브나무는 빗자루 같은 가지를 흔들어 바람에 응답한다. 혹투성이 줄기는 2미터를 뻗었다가 네 가닥의 가지로 갈라져 2~3미터를 더 올라간다. 돔 형태의 무성한 우듬지는 8미터 너비로 벌어졌다. 올리브나무가 서 있는 곳은 도로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돌계단의 안쪽 만곡부다. 해가 중천에 뜨면 잎들이 이곳의 유일한 그늘을 드리운다. 고양이 세 마리가 등을 대고 뒹굴며, 허브 상인의 짐에서 떨어져 발길에 짓밟힌 세이지와 박하에 털을 비빈다. - P278
올리브나무는 지중해의 고된 여름에 잘 적응했다. 가장 뜨거운 시기에는 왁스를 잔뜩 칠한 것 같은 불투수성 잎의 숨구멍을 꽉 닫은채 혼수상태로 여름을 난다. 여름이 지나면 성문 옆 올리브나무의 잎들은 모양을 바꾼다. 햇볕에 마르지 않으려고 주맥 둘레로 대롱처럼 말려 가지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이다. 그래야 다공성인 은빛의 잎밑면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밑면이 은빛인 것은 잎의 표면바로 위에 있는 투명한 세포 수천 개가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이 세포들은 작디작은 파라솔처럼 기둥에 얹혀 있으며 숨구멍 주변의 잎 표면 가까이에 수증기를 붙잡아두어 얇은 수분층을 만들어냄으로써 숨구멍이 더 오래 열려 있도록 한다. 대다수 올리브나무의 뿌리는 빗물을 흡수하기 위해 표토에 넓게 퍼져 있다. 이곳의 빗물은 깊이 스며들기 전에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과 수분의 공급 패턴이 달라지면 올리브나무 뿌리의 구조는 환경에 맞게 변화한다. 관개 시설이 있는 과수원에서는 뿌리가 관개수로 근처에 뭉쳐 있으며 1미터 넘게 파 들어가는 일이 드물다. 성기고 마른 흙에서는 굵은 뿌리 대여섯 가닥이 제각각의 경로를 따라 6미터깊이로 뻗는다. 나무뿌리는 다 적응력이 있지만, 올리브나무 뿌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뿌리의 역동성은 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늙은 나무의 줄기는 근육질의 이랑 사이사이에 깊은 골이 파여 있어 세로로 홈이 난 모습이다. 이랑 하나하나가 원뿌리 하나하나와 이어져있다. 그 뿌리가 물을 찾으면 거기에 연결된 줄기와 가지는 수십 년 동안 생장한다. 뿌리가 죽거나 뿌리 주변에서 물이 마르면 연결된 땅 위부분들도 죽는다. 수령이 몇십 년 이상인 올리브나무는 이렇듯 반半독립적인 뿌리·가지 덩이의 결합체다. - P281
‘나크바의 날‘ 시위가 끝나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마스쿠스성문 앞 장터가 다시 열렸다. 그 모든 공간의 아래에서는 물이 돌 위로 흘렀다. 병사들은 서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관개수로를 갖춘 잔디발, 물놀이장, 분수가 있는 곳으로 시위대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장벽을 통과하고 나서는 옛집 열쇠를 써보지 못한 채 서안지구와 수용소로 돌아갔다. 서안지구는 50년간 군사 통치를 받았다(오슬로 협정이후로 제한적 자치가 허용되기는 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장벽과 경비대가 보호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마을, 농장과 붙어 있다. 정착촌과 마을은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구분된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에는 검은색 물탱크가 빼곡하지만, 이스라엘 정착촌의 지붕에 있는 (수로를 갖춘 야자나무 뒤로 슬쩍슬쩍 보이는) 저수 시설은 몇 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생존이 아닌 태양열 난방용이다. 현지 타운과 마을을 그대로 통과하여 정착촌으로 곧장 흐르는 이 수로는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필라테의 수로를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 물탱크는 군사적·정치적 갈등으로 물 공급이 차단되거나 연례행사처럼 (이스라엘 정착촌에는 풍부하게 공급되면서) 배급이나 제한 급수가 이루어질 경우를 대비한 비상용이다. - P288
1950년대에 이스라엘 발명가들이 유속 조절용 플라스틱 상자와 구멍을 개발했다. 이 방식에다 호주와 유럽의 점적관수(가는 구멍이 뚫린 관을 땅속에 약간 묻거나 땅 위로 늘여서 작물 포기마다 물방울 형태로 물을주는 방식_옮긴이) 파이프를 접목한 덕에 젊은 나라 이스라엘의 농부들이 독립 선언을 재천명하고 메마른 땅과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할" 수 있었다. 관개용수는 저수지나 희석한 하수나 (일부 지역에서는) 짠물에서 얻었다. 아마겟돈 숲에서는 키부츠와 교도소에서 배출된 하수가 파이프를 통해 흘렀다. 겨울철 몇 달간만 비가 내리는 곳에서 는 남들이 폐수로 치부하는 것이 귀중한 액체가 된다. 이스라엘 농부나 올리브 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필요는 좋은 스승이다"라는 유럽의 옛 속담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점적관수는 올리브나무에 물을 공급했을 뿐 아니라 나무의 성질자체를 바꿨다. 아마겟돈의 올리브나무는 다마스쿠스 성문의 근육질나무나 껍질에 골이 파인 고목처럼 빗물에만 의존하는 나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이곳의 올리브나무는 신품종의 어린 나무로, 빨리 자라고 기름을 많이 내도록 개량되었다. (포도 수확기를 개조한) 집채만한 수확기가 가랑이를 벌린 채 굉음과 함께 올리브나무 위로 지나가며 가지의 올리브를 흔들어 따서 호퍼(석탄, 모래, 자갈 따위를 저장하는큰 통_옮긴이)에 담는다. 흙이 축축하면 가지를 흔들 때 줄기가 통째로뽑히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 어린나무로 대체한다. 어떤 나무도 수확기입구보다 높거나 넓게 자랄 수 없다. 높이는 약 2미터, 너비는 1미터가 최대다. 나무들을 양팔 간격으로 심어서 울타리처럼 우듬지가 겹친다. 이 방식을 개발한 이스라엘인 라비 시몬Lavi Shimon은 국제 학술회의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것처럼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올리브나무를 빽빽하게 일렬로 심어 재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의 혁신적 재배 방식은 스페인과 호주에까지 보급되었다. - P290
우리는 나무 아래에 천막을 깔고 손으로 올리브를 땄다. 올리브는1950년대식 트랙터가 끄는 트레일러 화물칸에 실려 운반되었다. 당나귀들이 근처 밭에 서 있다가 일꾼들에게 물을 날라주고는 올리브 자루를 집과 압착기로 가져갔다. 나 같은 풋내기가 올리브를 따는 밭에서는 머뭇머뭇 띄엄띄엄 소리가 났다. 농부와 가족은 수확 솜씨가 뛰어나서, 손가락이 잔가지를 훑으면 올리브가 두두둑 우박 소리를 내며 천막을 두드렸다. 사람 목소리가 각각의 나무를 후광처럼 둘러쌌다. 나의 서툰 아랍어 실력과 유창한 동료들의 통역을 통해 몇 마디는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다리에 올라선 남자들은 가지치기 하는 법, 양고기 요리하는 법, 올리브유를 최대한 많이 짜내는 법을 놓고 설전을벌였다. 여자들은 남자 방문객이 있으면 대부분 입을 다물었지만, 외국인이 다른 나무로 이동하면 웃음소리와 가족 이야기가 가지 사이로터져 나왔다. 수확하는 동안 각 나무는 인간적 스토리텔링의 중심이 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람, 나무, 땅, 그리고 이들의 관계였다. 들판의 수확이끝나갈 즈음이면 수만 개의 단어가 입에서 귀로 흘러들었다. 이렇듯풍경의 마음-기억, 연결, 리듬 중 일부는 인간의 의식 속에 간직된다. 올리브나무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생태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지어내고살을 붙이는 것이다. 다마스쿠스 성문 옆의 올리브나무와 맨해튼의 콩배나무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소식과 물건을 교환하는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다. 맨해튼에서는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매일 수천 명이 나무 주위에서 교류한다 - 도시의 교류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에서 가족과 이웃이 나누는 대화의 단단한 매듭에 비하면 짧은 접촉에 불과하다. 분리 장벽 건너편에서 올리브를 따는 것은 대부분 기계 아니면 태국 이주 노동자다. 태국 노동자들은 수학과 괭이질과 땅파기를 하던 팔레스타인인과 시오니스트 농민을 대신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파견되었다. 여느 산업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사회망은 이제 나무에게서 거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스라엘인의 수가 하도 적어서 키부츠의 95퍼센트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다. 농장 노동자 중에서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레츠 이스라엘Eretz Yisrael(‘이스라엘의 땅‘이라는 뜻으로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옮긴이)에 대한 농업 지식은 이제 태국어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된다. 농업부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시민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일꾼들은 여권에 외국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토종이다. - P297
나와 이야기를 나눈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 군이나 분리장벽이나 정착민에게 나무를 빼앗겼다. 장벽이나 정착촌 울타리 때문에 땅이 잘려나간 사람도 많았다. 농부들은 정착민들이 나무를 베고 제초제를 뿌리는 장면, 사람들을 쏘거나 때리는 장면, 농장에 불을 놓는 장면을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장벽 너머의 과수원을 방문하려고 해도 군인들이 잠깐씩밖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어떤 농가는 할아버지만 허가를 받았는데, 올리브 농장을 손으로 가꾸고 수확하려면 1헥타르당 300~400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방치된 채 농장이 폐허가 되어간다. 많은 관문에서 연장과 물병의 반입이 금지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자기네 예전 과수원을 차지한 이스라엘 정착민에게서 마실 물을 사야 한다. 이런 조치가 나무와 사람의 유대 관계를 끊는 데는 몇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농장은 잡초밭이 되고 화재에 취약해진다.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는다. 서안에서는 장벽 너머의 올리브 수확량이 평균 75퍼센트 감소했다. 3년간 경작하지 않은 땅은 국가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안보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땅은 군대에 징발된다.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의 행동이 이스라엘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면 불법이던 정착촌이 합법으로 둔갑한다. 서안의 땅은 한 조각 한 조각 합병되고 주민들은 점점 좁아지는 거주 구역으로 내몰린다. 희망도 점점 쪼그라든다. 농부 한 명이 장벽 너머의 몇 그루 남지 않은 나무를 돌보고 나서 철조망 사이를 걸어 돌아오며 내게 말했다. "지금보다 더 비참해질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트랙터를 타고 왔다 갔다 했지만 지금은 늙은 당나귀를 몰고 걸어다닌다. 선동가들이 이 좌절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비좁은 통로와 급조된 콘크리트 주택뿐인 지닌 난민촌의벽에 붙은 포스터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거나 자살폭탄 공격을 저지른 사람들을 기리는 것뿐이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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