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를 끌 만한 것은 바 뒤편에 내리던 파란색 인공 비뿐이었다. 남들만큼 나도 그 비가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걸 보면서여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내 동생은 영화를 보러 갔다.
우리는 일주일에 사나흘씩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 역할을 하던 어두운 반원형 막사의 접이의자에 앉았고,
밖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1943년 여름 그곳에서 처음 존 웨인을 보았다. 그 걸음걸이를 보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와일드캣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는 존 웨인이 여자에게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나는 서부영화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여자로 자라나지 못했고 내가 사귄 남자들도 장점이 많았으며그들이 데려가준 장소들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들은 존 웨인이 결코 아니었고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로 데려가준 적도 없다. 영원히 인공 비가 내리는 내 심장 깊은 곳 한켠에서, 아직도 나는 그 대사를 듣게 될 날을 기다린다.
자기현시의 차원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불러오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 웨인이 말을 달려 내 유년기를 가로질렀을 때, 아마 당신의 유년기도 가로질렀을 때,
그 남자가 우리 꿈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형성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런 남자가 병에 걸린다니, 몸속에 병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치료하기 힘든 병을 품고 다닌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소문은 어떤 모호한 불안을 건드려 느닷없이 우리로 하여금 유년기를 회의하게 했다.
존 웨인의 세계에서는 존 웨인이 대장인 줄 알았는데, "달리자" 존 웨인은 말했다. "말을 타." "앞으로!" 그리고 "사나이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어이, 안녕하쇼" 처음 여자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했다. 건설현장 숙소일 수도 있고 기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웃자란 수풀을 헤치고 말을 달려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포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무튼 존 웨인이 말하면 의도의 곡해가 있을 수 없었다. 그처럼 강렬한 성적 권위는 어린애라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돈 욕심과 의혹, 사람의 손발을 묶는 모호성으로 규정된다고 우리가 일찌감치 알아본 상황에서 존 웨인은 다른 세계를 암시했다. 과거에는 있었을수도 있고 과거에도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인간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저 나름의 도덕적 코드를 만들어 지키며 살 수 있는 장소, 남자가 해야할 일을 한다면 여자를 얻고 역경을 헤치고 달려가서 끝내는 자유인으로서 자기 집에 살게 되는 세상 말이다. 그 남자는 몸속 어디가 잘못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게 아니라, 꽃다발과 약과 억지 미소에 둘러싸여 높은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반짝이는 강물 어귀 이른 아침 햇살에 은은히 빛나는 미루나무 숲속에 있어야만 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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