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이 레드우드를 덮었을 때 시작된 한화는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다. 에오세의 기후와 마찬가지로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갈지자걸음이 내리막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한랭화 추세 덕분이다. 유난히 춥고 건조한 기후 때문에 아프리카의 숲이 후퇴하면서 우리의 선행인류 조상들은 갓 출현한 사바나와 초원으로 이동했다. 탁 트인 평원에 살던 이 유인원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했으며 인류의 모든 역사는 비교적 추운 시기에 전개되었다. 큰그루터기 주변 풍경- 한랭 건조 기후로 인한 광활한 초원과 잡목림의 풍경을 둘러볼 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이러한 판단이 나의 인간적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로리선트의 에오세 레드우드 가지에서 곤충을 사냥하던(주머니쥐 닮은) 동물이나 아래쪽에서 잔가지를 뜯어 먹던 난쟁이 말은 안개비 너머로 보이는 높고 무성한 식물의 풍경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 P186
생태적 아름다움은 자극적인 예쁨이나 감각적 참신함이 아니다. 생명 과정에 대한 이해는 종종 이런 피상적 인상을 뒤엎는다. 화상 ‘흉터‘는 실은 오래도록 기다린 재생일 수도 있다. 발밑의 미생물 공동체는 산에 깔린 석양의 뚜렷한 장관보다 더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썩은 것과 더러운 것에서 찐득찐득한 숭고미를 찾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생태미학, 즉 생명 공동체의 특정한 부분 안에서 지속적이고 체화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능력이다. 관찰자, 사냥꾼, 벌목꾼, 농부, 포식자, 음유시인, 유해 미생물과 공생 미생물의 서식처 등 생명 그물망 내의 다양한 존재 양태로서의 인간도 이 공동체에 포함된다. 생태미학은 인간의 자리가 없는상상 속 황무지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의 속함을 향해 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 P193
잎을 수색하는 사이사이에 녀석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잔가지 끝에 덜 자란 단풍나무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한참 뒤에 떨어질 시과翅果(열매의 껍질이 얇은 막 모양으로 돌출하여 날개를 이루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 흩어지는 열매_옮긴이) 헬리콥터의 축소판으로 두툼하고 윤기가 난다. 단풍나무의 잎은 자라면서크기가 커진다. 많은 잎이 이미 곤충의 입에 잘리고 말리고 뚫렸다. 4월 초에는 조용하던 산들바람이 단풍나무의 목소리인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를 얻었다. 잔가지를 따라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의 진동은 살랑거리는 잎보다 1000만 배 느리다. 맥박 치며 피를 순환시키는 대동맥처럼, 잔가지는 밤새도록 부풀어 있다. 세포가 물로 포동포동해지기 때문이다. 여명이 밝아 태양이 잎에서 수증기를 뽑아내면잔가지는 빨대를 쭉 빨아서 쪼그라들듯 굵기가 줄어든다. 이 축소 현상은 아침 내내 계속되어, 정오가 되면 잔가지는 해 뜨기 전보다 40마이크로미터 가늘어져 있다. 대개 한낮이 되면 뿌리는 흙 속의 수분을 모조리 빨아들인 뒤다. 그러면 물의 상승이 멈춘다. 물이 오후의 공기중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잎이 숨구멍을 닫으면 잔가지를 꽉쥐고 있던 힘이 느슨해진다. 저녁이 되면 물이 뿌리와 줄기로 돌아오고 잔가지의 둘레가 커진다. 이 리듬에 더해 세포가 새로 생기고 팽창하면서 지름이 매일같이 조금씩 증가한다. 화창한 일주일 동안 단풍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면 그래프에서 정오의 골이 일주일 전 꼭두새벽의 마루보다 높아진다. - P206
20년 전에는 구름이 더 두터웠다. 그때는 소금과 모래를 오늘날보다 세 배 많이 살포했다. 호흡은 지질학적 경험이었다. 축축한 허파꽈리는 공중을 떠다니는 암석층(먼지) 때문에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이제 도로관리청에서는 소금을 훨씬 효율적으로 쓰지만, 요즘도 이따금 소금이 쌓여 전력선이 단전된다. 19세기에 콜로라도를 홍보한 이들은 "사철 밝은" 햇빛과 "상쾌하고 건강에 좋은" 공기를 약속했지만, 날씨야 어떻게 되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고무로 아스팔트를 마찰시키려는 우리의 집단적 욕망에 공염불이 되었다. 눈이 녹고 비가 내리면 길거리와 공기가 깨끗해진다. 하지만 뭍의 청결은 물의 혼탁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소금, 모래, 미사는 대부분 사우스플래트와 체리크리크로 흘러든다. 토사에 오염된 물은 도시의 가래침이다. 미루나무 앞의 개울물은 여느 때는 수돗물처럼 깨끗하지만겨울 눈이 녹으면 뿌옇고 흐릿해진다. 덴버의 물은 잠깐 동안 복대기(광석을 쌓아 금을 골라낸 뒤 남은 돌가루-옮긴이)가 된다. 들판미루나무plains coltonwood 종의 분포도는 북아메리카 대륙 중앙에 불규칙한 타원형으로 나타난다. 어느 해안에서도몇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흙이 메마른 탓에 나무는 주기적인 소금 범람에 적응해야 했다. 비가 찔끔 왔다가 땅이 마르는 일이 반복되면 깊은 토양층에서 염분이 끌려 올라온다. 비가 내릴 때마다 토양의 염분이 녹는데, 증산 작용과 흙 입자의 모세관 인력으로 물이 딸려 올라오면 태양이 이 용질 용액에 녹아 있는 물질 옮긴이)을 더 높이 끌어 올린다. 땅이 완전히 젖으면 염분이 씻겨 내려가지만, 미루나무가있는 지역에서는 큰비가 드물다. 따라서 서부 미루나무의 조상은 소금기 있는 흙을 겪어봤으며, 살아남은 나무는 이 지식을 현 세대에 전해주었다. 미루나무는 끈기로는 사발야자나무를 당해낼 수 없지만, 미루나무의 세포는 염분을 방에 격리할 수 있고, 염분의 친수성을 완충하는 방어 화학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소금기 있는 표토보다 아래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또한 미루나무 뿌리는 염분에 저항력이 있는 균류와 그물망을 형성하여 물, 영양소, 방어 화학물질을 얻는다. 땅 위에있는 미루나무 싹은 폰데로사소나무와 마찬가지로 나무 전체에서 가장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 깃대를 올린 것은 땅속 공동체다 - P219
송어 낚시꾼 한 명당 장비 가격이 1000달러는 되는 것 같다. 내 의류는 상대도 안 되지만, 내 배낭에는 소리를 낚고 빛을 피는 전자기기가 들어 있는데 가격이 얼추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일이나 가족으로부더 하루 동안 해방될 여유, 입장료와 기름 값을 낼 돈, 들판에서 협곡까지 주파할 수 있는 튼튼한 자동차가 있다. 우리는 모두 남성이며, 몇십 년째 퇴직금을 붓고 있을 것이다.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는 21세기 초 미국에서의 경쟁을 간결하게 요약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모두 자신이 백인이라고 믿는다. 예전 같으면 우리는 겉보기에는 같아도 "가톨릭교도, 코르시카인, 웨일스인, 메노파 교도, 유대교도의 계층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특권을 타고났으며 백인공작으로, 들로 산으로 다니며 셰익스피어의 공작처럼 ‘속세의 잡답을 피해서 나무에서 혀, 시내에서 책, 돌에서 설교/ 어디서나 좋은것을 찾을 수 있다. 같은 나무와 돌이지만 혀와 책과 설교는 다르다. 주디 벨크udy Belk는 미국 서부의 평원을 가로질러 가족과 자동차 여행을 했는데, 그녀의 아들은 "오클랜드 출신의 흑인 네 명이 몬태나주 시골길을 달린다는 계획을 처음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 "미쳤군아들의 반응은 캐럴린 피니Carolyn Finney의 말을 빌리자면 "두려움의 지리의 표출이었다. 미국 역사와 현재의 인종 간 불평등으로 보건대 야외에서 아무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극소수의 인구 집단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나이 든 백인으로서 내가 숲과 강, 제복 차림의 무장한산림 경비대에게 접근하는 맥락은 흑인 십대와는 전혀 다르다. J. 드루래넴. Drew Lanham의 ‘흑인 탐조인을 위한 아홉 가지 규칙‘ 중 하나는이것이다. "후드티를 입고 새를 관찰하지 말 것. 절대로" 숲, 개울산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 이곳 또한 ‘보이지 않는 숲orestunseen(저자의 전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의 영어 원제_옮긴이), 들리지 않는 숲이다. 이 외로운 개울에 백인들은 자신이 죽인 것의 시체를 내다버린다. 나무에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신기한 열매strange fruit"(백인에게 살해당해 나무에 매달린 흑인의 시신을 상징한다_옮긴이)가 매달려 있다. ‘야외‘들, 숲, 녹지에는 폭력의 기억이, (지금도) 폭력의 위협이 서려 있다. 국립공원 관리소의 빌 귈트니Bill Gwaltuney가 산림 경비대원이되겠다고 가족에게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경고했다. "숲에는 나무가 많고 밧줄은 값이 싸단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올가미에 목매달려 죽었다) 언론인이자 산악인 제임스 에드워드 밀스James Edward Mills는 과거와 현재의 위험이 남긴 유산을 ‘사회적 기억에 주조된 문화적 장벽" 이라고 부른다. - P223
인간의 이동 패턴이 독수리, 하루살이, 기러기, 사향뒤쥐 같은 동물의 패턴과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근원이지만 인공적 환경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던 생명 공동체를 다시 자각하게 된다. 물의 흐름과 신체의 움직임이 이렇게 합일되면 속함은 더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안무를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안무가는 개체가 아니라 많음 사이의 관계다. 강은 생명 없는 물 분자의 통로가 아니라 생명체다. 아마존 사라야쿠 운동가의 말이 들린다. "강은 살아서 노래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 전략입니다." 인간은 이 많음의 일부다. 사우스플래트와 체리크리크는 상류의 많은 저수지와 샛강이 합쳐진 물줄기다. 덴버 수자원 관리국의 현황 표와 관리 계획은 하천의 물방울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개입이 강을 길들여 야성적 본성을 사라지게 할까? 그럴 리 없다. 물 관리 계획을 작성하는 손, 글자가 표시되는 종이나 화면, 댐을 고안한 기술자, 사우스플래트강의 도심 속 물길은 (연방에서 지정한 ‘보호‘ 구역인)상류의 물 못지않게 야생이고 자연적이고 편안하다. 우리도 자연이다. 떼어낼 수는 없다. - P229
자연과 비자연의 이분법적 풍경은 한번 고착되면 스스로를 강화한다. 녹지와 무분별한 개발의 대조가 극명해질수록 ‘녹지‘의 필요성이(겉보기에) 커지는 반면에 나머지 풍경은 더더욱 비자연적으로 보이게된다. 이런 세상에서 도시는 환경주의자들에게 멸시받지만, 사람이 없는 공원, 숲 보호구역, 지정 녹지는 칭송받는다. 풍경의 이중성이 커짐에 따라 인간이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환경주의 전통, 농업 전통, 과학 전통 깊은 곳에서는 도시에 대한 적의가 흐르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이렇게 썼다. "대도시의 군중이 순수한 정부를 뒷받침한다는 말은 상처가 근력을 뒷받침한다는 말과 같다." 미덕은 시골의 백인 ‘농부‘에게서 찾아야 했다. 뮤어가 자연을 만난 것은 "우둔한 도시의 계단과 죽은 보도와의 교류에서 탈출한 뒤였다. 앨도 레오폴드의 ‘땅‘에는 "토양, 물, 식물과 동물은 포함되지만 인간 거주지의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레오폴드가 보기에 ‘인간이 야기한 변화는 진화적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며 마치 질병과 같은 혼란을 낳는다. 학계에서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생태학이 생태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외콜로기(kologie"19세기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그리스어 ‘오이코스-기아kactovrier‘에서 작명한 독일어 신조어라는 이 분야의 이름은 ‘거주지 연구‘라는 뜻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주력 사업인 장기생태연구Long-TermEcological Research 프로그램에 도시 지역에 추가된 것은 1997년 들어서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생물학 현장 연구 시설은 대부분 도시와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자연이 타자이고 별개의 영역이며 인간의 비자연적 흔적에 오염된다는 믿음은 우리 자신이 야생의 존재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콘크리트보도, 페인트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액체, 덴버 시의 성장을 계획하는 시청 문서는 환경을 조작하는) 영장류의 진화된 정신 능력으로부터 발현되었다는 점에서 미루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 새끼 아메리카물까마귀의 부름소리나 삼색제비의 둥지 못지않게 자연적이다. 물론 이 모든 자연 현상이 슬기롭고 아름답고 정당하고 좋은가는 별개 문제다. 이 수수께끼를 가장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연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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