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시 십분에 마당으로 나가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큰 북이 울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를 들었고, 청년기 이후 처음으로 일부러 향수의 함정에 발을 내딛었고,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집시들이 와글거리던 그 신기한 오후를 회상했다. 산따 소피아 델라 삐에닷이 부엌에서 하고 있던 일을 팽개쳐두고 대문간으로 달려 나갔다.
「서커스단이에요!」 그녀가 소리를 쳤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역시 대문 쪽으로 가서 서커스단의 행진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 틈에 섞여들었다. 코끼리 목덜미에 황금빛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슬퍼 보이는 단봉 낙타도 보았다. 네덜란드 여자처럼 차려입고 국자로 냄비를 두드리며 행진의 박자를 맞추고 있는 곰도 보았다. 행렬 끝에서 재주를 부리는 어릿광대들도 보았는데,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뻥 뚫린 환한 공간으로 변한 길거리와, 날개미들이 가득 찬 하늘과, 허전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일부 구경꾼들만 남았을 때, 다시 비참한 고독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서커스를 생각하면서 밤나무쪽으로 갔고, 오줌을 누면서도 계속 서커스 생각을 하려 했지만, 이제는 기억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병아리처럼 머리를 두어깨 사이에 처박고 이마를 밤나무에 기댄 채 꿈쩍도 하지 않고있었다. 다음날 아침 열한시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뒤마당으로 나갔던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가이나소들이 날아 내려오는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을 때까지 가족들은 모르고 있었다. - P98

사신은 아마란따에게 언제 죽을 것인지, 레베까보다 먼저 죽을 것인지조차도 말해 주지 않은 채 돌아오는 사월 육일부터 수의를 짓기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아마란따가원하는 바대로 수의를 섬세하고 훌륭하게 짓되, 레베까의 수의를 지을 때처럼 성실하게 지으라고 했고, 그 수의를 다 완성하는 날해질 무렵에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비통함도 느끼지 않고 죽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후, 아마란따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으로 시간을 벌려는 생각에서 최상품 아마 원사를 사들여 몸소 천을 짜기 시작했다. 어찌나 공을 들였던지 천을 짜는 데만 사 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의 짓는 일을 레베까가 죽은 후까지 연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갔으나, 그 같은 깨달음이 오히려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평온을 부여해 주었다. 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들었다 녹이고다시 만드는 일을 부질없이 되풀이했는지를 이해했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세상사는 그녀의 피부에서만 머물렀을 뿐, 그녀의 내면은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다. 아마란따는 새로운 빛아래서 기억들을 정화시키고 우주를 재창조하는 게 가능하고, 해질녘이면 삐에뜨로 끄레스삐에게서 풍기던 라벤더 향기를 회상하면서도 몸서리를 치지 않는 게 가능하고, 사랑과 증오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심오한 이해심을 통해 레베까를 고통의 수렁에서 구해 주는 게 아직 가능했을 때인 수년 전에 그런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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