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술라가 그 소식을 전하면서 맨 먼저 편지를 보여 준 사람은 전쟁이 종결된 후부터 마콘도 시장이 된 보수파 장군 호세 라켈 몬카다였다. "아우렐리아노 이 친구, 보수파가 아니라는게 참 애석하군요." 그가 편지를 보고 한 마디 했다. 그는 진실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을 존경하고 있었다. 많은 보수파 민간인처럼 호세 라켈 몬카다는 자기 당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으며, 비록 군인의 자질은 부족했건만, 전쟁터에서 장군이라는 칭호까지 획득했었다. 그렇지만, 그는자기 당의 대다수 동지처럼 반전주의자였다. 그는 무기를 든사람들을 원칙 없는 게으름뱅들이, 모사꾼, 야심적인 사람들, 혼란 속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 민간인에 대항하는 자들이 라고 생각했다. 지성적이고, 사근사근하고, 혈기 왕성하고, 식성 좋고, 투계를 좋아하는 그는 한때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가장 위협적인 적수였다. 그는 그 광범위한 연안 지역의 여러 직업군인에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군대에게 자신의 주둔지 하나를 내줄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그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두 통의 편지를 남겨두고 철수했다. 그중에서 내용이 무척 길었던 편지 한 통은 전쟁을 좀 더 인간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공동 캠페인을 전개하자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 통은 자유파가 장악한 지역에 살던 아내에게 보내는 것이었는데, 아내에게 꼭 전해지도록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편지를 두고 갔었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살벌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에라도 두 사령관은 포로 교환을 위한 휴전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휴전기는 약간의 축제 분위기까지 가세된 일종의 휴식기였는데, 몬카다 장군은 휴전기를 이용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체스 두는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 P229
"이건 알아 두게, 친구. 자네를 총살시키는 건 내가 아니네. 혁명이 자넬 총살시키는 걸세." 그가 사형수에게 말했다. 몬카다 장군은 방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고서도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지조차 않았다. "그런 똥 같은 소린 집어치우게, 친구." 몬카다 장군이 대꾸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마콘도로 돌아온 뒤 그 순간까지 몬카다 장군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 그는 몬카다 장군의 너무 많이 늙어 버린 모습과, 수전증에 걸린 손,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지니게 마련인 약간은 상투적인 체념을 보고 놀라워했는데, 그때 동정심으로인해 마음이 동요되는 자신에 대해 깊은 경멸감을 느꼈다. "모든 군법회의란 본디 우스꽝스러운 연극인 바, 이번에 우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에 이길 것이기 때문에 사실자네가 남의 죄값을 대신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자네가 내 입장이었다면, 자네도나처럼 하지 않았겠는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몬카다 장군은 셔츠 자락으로 도수 높은 거북껍질테 안경을 닦기 위해 일어섰다. "그랬을 테지. 하지만 결국 우리 같은사람들에게 총살형은 자연사나 마찬가지이므로 내가 걱정하는 건 자네가 날 쏘아 죽인다는 문제가 아닐세." 그가 말했다. 그는 안경을 침대 위에 놓고 줄 달린 시계를 몸에서 떼어 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말이야, 자네가 군인들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들과 전투를 너무 많이 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했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과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그토록 비참한 경우를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네." 그는 결혼 반지를 빼고, 성모 마리아 상이 달린 목걸이를풀어 안경과 시계 옆에 나란히 놓았다. - P249
다섯권이 넘는 자작시도 다시는 읽지 않아, 시들이 잊혀진 채 트렁크 속에서 들어 있었다. 밤이건 낮잠을 자는 시각이건 자신이 데려온 여자들 가운데 하나를 해먹으로 불러 일상의 욕망을 채우고는, 걱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돌멩이처럼 태평스럽게 깊은 잠에 빠졌다. 당시, 멍한 가슴이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처음에그는 영광스러운 귀향과 믿기지 않는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이 위대하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전술에서는 자신의 위대한 스승이자, 치장하고 있던 가죽 옷과 재규어발톱으로 어른들의 존경과 아이들의 감탄을 유발하던 말보로공작을 오른팔처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흐뭇하게 생각하고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우르술라까지도, 자기 몸으로부터 3미터 이내로는 접근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의 부관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분필로 원을 그려 놓았는데, 그는 그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 원의 중앙에서 짧지만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몬카다 장군을 총살하고 난 후 처음으로 마나우레에 진군했을 때, 그는 자신이 희생시킨 몬카다 장군의 마지막 소원을들어주기 위해 서둘렀는데, 장군의 미망인은 안경과 목걸이, 시계와 반지는 받았지만, 그가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들어오지 마세요. 대령, 당신은 당신이 일으킨 전쟁에서는명령할 수 있겠지만, 이 집에서는 내가 명령해요." 미망인이 그에게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분노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개인 경호원들이 미망인의 집을 강탈하고 잿더미로 만들었을 때야 분한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마음을 잘다스리게, 아우렐리아노. 자네는 산 채로 썩어 가고 있어." 그때 헤리넬도 마르케스 대령이 충고했다. - P257
그의 명령은 채 시달되기도 전에, 아니 그가 어떤 명령을 내릴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수행되었고, 항상 그 명령이 미칠 것이라 생각되던 범위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미쳤다.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방향 감각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점령한 이웃 마을들에서 자기를 환호한 그 사람들이 적군을 환호한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각자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각자의 목소리로 그에게 얘기를 하고, 그가 그들에게 인사를 할 때 그랬던것처럼 똑같은 불신을 품은 채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들이 그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소년들을 만났다. 그는 자기 씨앗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싹트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한 고독감을 느꼈다. 부하 장교들조차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말보로 공작과도 다투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는 얼마 전에 죽은 그친구야."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불안감으로 인해 지치고, 갈수록 더 늙고, 더 쇠약해지고, 갈수록 왜 전쟁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언제까지 할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늘 제자리걸음하도록 만드는 그 영원한 전쟁의 악순환으로 인해 지쳐버렸다. 분필로 그려 놓은 원 밖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한 사람, 백일해를 앓는 아들이 있는 사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지긋지긋한 전쟁을 더 이상 견딜 수가없어 잠이나 실컷 자러 가고 싶은 사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모든 게 정상입니다. 대령님."이라고 보고하기위해 마지막 남은 힘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상태,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끝없는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듯 불길한 예감 때문에 스스로 혼자가 된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추위로부터 도망쳐 옛 추억의 온기가 밴 마콘도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던 것이다. - P260
끝없이 긴긴 그날 밤, 헤리넬도 마르케스 대령이 아마란타의 뜨개질 방에서 지냈던 무료한 오후를 회상하고 있는 사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고독의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그 껍질을 갉아 댔다. 아버지에 이끌려 처음으로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그 아득한 어느 오후 이후 그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낀 순간들은 은세공 작업실에서 작은 황금 물고기들을 만들면서 흘러갔었다. 근 사십 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야 했고, 전쟁을 통해 맺어진 모든 조약을 죽음을 걸고 위반해야 했으며, 승리의 영광이라는 수렁에 빠져 돼지처럼 허우적거려야 했다. - P264
"걱정 말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미소를 지었다. "죽는다는 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거든." 그의 경우 그건 맞는 얘기였다. 자신이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는 그 신비한 면역성, 즉 정해진 날짜에 죽을 때까지는 전쟁의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을수 있는 불멸성을 지닐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보다도 더욱 어렵고 더욱 처절하고 더욱 값비싼 패배를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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