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조에 대해 알아보려면 동물의 진화 계통수를 놓고 몇 가지 추론을 펼칠 필요가 있다(그림6-21. 생물학자들이 진화 계통수에서 동물군들의 상대적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유연관계를 알아야만 어떤 속성이 어느 동물군에서 언제 진화했는지 유추할 수 있기때문이다. 곤충류와 척추동물은 동물 계통수에서 가장 굵은 두 가지를 대변한다. 두 가지의 정의, 그리고 근본적 차이는 배아가 형성될때 최초의 원구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 입이 형성되느냐에 달려 있다.
입이 배아의 원구 반대방향에서 형성되는 동물을 후구동물이라 하며, 사람을 비롯한 모든 척추동물, 극피동물(성게 등), 기타 몇몇 다른 동물군이 포함된다. 반면 입이 원구로부터 발생하는 동물은 전구동물이라 하며, 파리를 비롯한 절지동물, 환형동물, 연체동물, 기타 몇몇 동물군이 포함된다. 후구동물과 전구동물이 나뉘기 전에 계통수의 몸통에서 곧바로 뻗어 나온 다른 가지로 해면동물, 자포동물(해파리, 산호, 말미잘), 빗해파리 등이 있다(이 ‘몸통‘ 가지 동물들도 새며이 - P188

유조동물의 혹스 유전자는 몇 개이고 어떤 종류인가? 연구진은 생물의DNA를 분리한 뒤, 유조동물 게놈의 수많은 유전자 중 혹스 유전자DNA만 선택적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적용했다. 유조동물은 체절이나 부속지 종류가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연구팀이 밝혀낸바에 따르면 유조동물은 파리나 기타 절지동물이 갖는 모든 혹스 유전자들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었다.
절지동물의 혹스 유전자들이 유조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 선조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아이셰아이아에서 아노말로카리스, 미크로딕티온, 마렐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캄브리아기 엽족동물과 절지동물이 열 개의 혹스 유전자라는 거창한 도구 일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후의 절지동물 설계들, 즉 거미류, 지네류, 곤충류, 온갖 종류의 갑각류 설계도 그 동일한 혹스유전자들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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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조차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혹스 유전자가 등장한 게 아니라면, 캄브리아기와 이후의 형태들은 어떻게 진화한 것인가? DNA에 특정 유전자 집단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았다. 열쇠는 여러 절지동물의 배아 지리 및 형성 과정을 직접 살펴보는 데 있었다. 우리는 어떤 유전자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점이 형태 진화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P202

캄브리아기 이후 진행된 절지동물 진화의 역사는 주로 체절과 다리 종류가 다양해진 과정이다. 삼엽충류의 몸통은 머리, 가슴, 꼬리의 세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영역에 존재하는 체절과 부속지들은 매우 비슷한 모양들이었고, 일반적으로 크기만 달랐을 뿐이다. 절지동물은 캄브리아기 이전에, 또는 캄브리아기 이후 1억 5천만 년안에 모두 지구상에 등장했으며, 그 현생 동물 형태는 부속지 종류가 십여 가지 이상으로 훨씬 다양해졌다. 절지동물의 머리, 몸통, 꼬리에 달린 부속지들은 섭식, 이동, 호흡, 땅 파기, 감각, 교미, 알품기. 방어 등에 적합한 형태로 각기 전문화되었다. 절지동물이 이처럼 성공을 거둔 것도 다리 종류들을 엄청나게 전문화함으로써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 P203

척추동물마다 혹스 복합체 수가 다르다는 것은 전체 유전자 툴킷의 규모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척추동물 진화에서는 비단 혹스유전자 복합체만이 아니라 툴킷에 있는 다른 유전자들도 복제되어 수가 늘었다. 게놈이 통째로 중복된 것일 수도 있고, 게놈의 상당 부분이 복제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등 척추동물의 툴킷이 더 큰것을 볼 때, 더 많은 유전자의 등장이 신체 설계의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최소한 척추동물 역사의 초기에는 옳다. 척색동물의 해부구조 진화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각 동물군이 얼마나 다양한 세포들을 지녔는지 꼽아보는 방법이 있다. 사람을비롯한 고등척추동물은 두색동물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세포를 갖는다. 척추동물의 연골, 뼈, 머리, 몇몇 감각 구조를 형성하는 세포들은 두색동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툴킷 유전자의 수.
그리고 세포의 종류 및 조직의 복잡도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가 많을수록 발생의 지침들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 후반에서는 유전자의 수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진화 과정 내내 혹스 유전자 복합체 수는 일관되게 네 개로 유지되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개구리와 뱀, 공룡과 타조, 기린과 고래는 모두 엇비슷한 네 개의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을 갖고 진화해온 것이다. 그러므로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혹스 유전자의 수 자체만 갖고는 형태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다. 동물들이 중심 체축이나 부속의 형태면에서 엄청나게 다양해진 까닭은, 앞서 본 절지동물과 마찬가지로, 배아에서 혹스 유전자 발현 지역의 위치가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혹스 유전자의 수가 좀 많아지긴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 P212

답은 스위치다. 배아에서 혹스 지역의 좌표를 통제하는 것은 바로 혹스 유전자의 스위치들이다. 혹스 지역의 진화적 이동은 혹스유전자 스위치들의 DNA 서열이 변화함으로써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쥐의 척추에는 경추 7개와 흉추 13개가 있는 반면 병아리의 척추에는 경추가 14개, 흉추가 7개 있다. 병아리 배아에서 혹스C8 유전자 발현 지역의 앞쪽 경계는 쥐 배아에서보다 상대적으로 한참 뒤다. 그런데 쥐와 병아리의 초기 배아에서 혹스C8 발현 경계를 통제하는 특별한 스위치가 존재한다. 쥐와 병아리는 그 스위치의 DNA 서열이 다르기 때문에 혹스c8 발현 위치가 상대적으로 다르게 된 것이다.
이 두 척추동물강에서 혹스C8 스위치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면일반적으로 동물의 진화에서 스위치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수 있다. 스위치의 염기서열 변화는 배아 지리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도 툴킷 단백질의 기능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대로 보전한 채 말이다. 위의 경우에는 혹스8 스위치에 변화가 옴으로써 특정 종류 척추의 개수가 변했다. 혹스c8 단백질은 다른 조직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단백질의 유전자 암호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그 모든 기능들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스위치에만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다른 신체부속들에는 아무런영향 없이 특정 모듈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설명한 갑각류 등 여러 절지동물의 신체지리에서 벌어졌던 변화도 바로 이런 전략에 의한 일이다. 혹스 발현 지역이 하나나 둘이나 세 체절 뒤로 이동한 것은 스위치가 변했기 때문이다. 혹스 단백질의 기능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다른 좌표에서 혹스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 식으로 스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 P214

툴킷 유전자의 발명 그 자체가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 방아쇠를 당긴 걸까?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생태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일단 좀더 크고 복잡한 동물이 진화하기 시작하자 그 추세가 꾸준히 지속되어 갈수록 더 크고 복잡한 동물이 생겨났던 것이다. 빅뱅이 벌어지고 난뒤, 다양한 동물종 사이의 생태적 상호작용과 경쟁의 압박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보다 복잡한 구조들이 쉴 새 없이 진화했다. 겹눈과 카메라, 걷기와 수영과 포식에 사용되는 관절 부속지들, 커진 몸의 순환을 담당할 심장, 보다 섬세한 이동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머리와몸통과 꼬리로 나뉜 신체구조 등이다. 툴킷 유전자들은 이 그림에서매우 중요한 배우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툴킷 자체는 가능성을 의미할 뿐, 운명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캄브리아기의 드라마는 생태계에 의해 지구적 규모로 추진된 것이라 봐야 한다. - P217

식사 도구와 종이 클립의 역사는 동물 부속지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부속자들 중 일부가 종래의 임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와기능을 진화시킴으로써 동물은 치열한 자연계의 경쟁을 치러낼 능력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다음에는 땅에서, 또 나중에는 공중에서 계속된 진화의 드라마는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이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차라리 ‘부속지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수영하고,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숨 쉬고, 땅을 파고, 나는 데 필요한또는 음식을 잡고, 으깨고, 삼키고, 찌르고, 거르고, 빨아들이고, 삼키는 데 필요한 더 뛰어나고, 빠르고, 가볍고, 강하고, 민첩한 부속지들을 경쟁하는 것이었다.
이런 발명들 덕분에 새로운 생활방식이 가능해져 다양성이 급속히 팽창하기도 했다. 이것을 진화의 ‘빅뱅‘이 아닌 ‘리틀뱅‘, 즉 ‘작은 혁명‘들이라 부를 수 있다. 혁신이 이뤄지고 나면 이후에도 진화적 변화들이 이어져 한껏 열린 기회를 더 확실히 이용했다. 척추동물은 어류 선조의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변형시켜 육지로 올라왔다. 척추동물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팔다리는 두 쌍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세 차례나 변형시켜서 새로운 종류의 동물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익룡, 조류, 박쥐류), 물로도 여러 차례 돌아갔다(고래와 돌고래, 바다표범 등). 땅을 누빌 사지도 여러 형태로 진화시켰다. 수백만 년 전, 인간 선조가 손가락 관절로 걷기를 그만두고 직립하자 이번에는 앞다리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렸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우리의 팔과 손은 온갖 종류의 활동에 사용될 수 있었다. 도구 제작, 사냥, 의사소통, 나중에는 상징을 동원해 자연계를 기록하는 활동도 하게 되었다. 크고 빠른 뇌가 진화하여 이 활동을 지지하였으며, 활동 자체가 뇌의 진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또 뇌의 진화는 자손을 낳는 과정에 관여하는 골격 구조의 진화를 불러왔으며, 부모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짐에따라 가족 구조의 변화까지 가져왔다. - P221

이때 이보디보가 강력한 증거들을 들고 나타났다. 곤충 중에서도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날개 발생 과정을 연구해보니 날개를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 단백질이 밝혀졌다. 그런 툴킷 단백질들 중두 가지를 들면 앱터로스(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날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와 누빈(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날개가 덜 여문 덩어리처럼 조금만 발달한다)이 있다. 미할리스 아베로프와 스티븐 코언은 날개가 갑각류의 아가미 분지에서 유래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앱터로스와 누빈 단백질들이 다른 절지동물의 부속지에서도 발현되는지 알아보았다. 특히 갑각류들을 조사해보았는데, 놀랍게도 앱터로스와 누빈 유전자는 갑각류 부속지의 외분지, 즉 호흡분지에서 선택적으로 발현하였다. 이 관찰에 대한 합당한 설명은 호흡 분지와 곤충의 날개가 상동기관이라는 것이다. 두 동물에 서로 다른 형태로 달려 있지만 동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대안적 설명을찾자면 갑각류가 호흡 분지를 만들 때, 그리고 곤충이 날개를 만들때 서로 독립적으로 두 단백질을 채택하는 기막힌 우연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가미나 날개를 만들 때 동원할 수 있는 툴킷 단백질은 그 밖에도 수백 가지나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곤충류의 선조인 수생 갑각류가 호흡 분지를만들 때 앱터로스와 누빈을 사용했으며, 가지가 날개로 진화한 후에도 그들이 그곳에 남아 활약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나중에 보겠지만 날개 외에도 다른 동물들의 다른 구조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곤충의 진화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선조 부속지의 외분지와 내분지가 분리되어, 외분지는 몸 위쪽으로 올라붙어 날개로 진화했고 내분지는 갈라지지 않은 걷는다리로 진화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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