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한 동물들의 툴킷 유전자 구성이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난 한가지 커다란 역설이 있었다. 어떻게 동일한 유전자들이 서로 다른 형태들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역설이었다. 이 역설을 풀 핵심 열쇠가 스위치들이다. 스위치들은 한 동물 내에서 툴킷 유전자들이 몇 번이고 반복 사용되게 해주며, 그것도 연속 반복 구조들 하나하나에서크든 작든 간에 아무튼 차이 나는 방법으로 사용되게 해준다. 스위치가 발생을 통제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나면, 스위치가 진화를 일궈온 방법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스위치들은 동일한 툴킷 유전자들이 서로 다른 동물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도와준다. 스위치 각각이 하나의 독립적 정보 처리 단위이기에, 한 툴킷유전자의 스위치 하나나 한 툴킷 단백질이 통제하는 스위치 하나가 진화적으로 변할 경우, 다른 구조나 패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은 채 그 구조나 패턴의 발생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듈 식 신체와 신체부속의 진화에 핵심이 되는 조건이다. - P178
더듬이, 부속지, 꼬리, 눈등을 갖춘 화석들은 복잡한 동물의 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된 편에 속하고, 절지동물, 환형동물, 척색동물, 연체동물 등 여러 현생 동물군들의 선조격인 형태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들은 약 천5백만년에서 2천만 년 사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급작스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 전 시기에는 동물이 살았음을 증거하는 화석 자료가 굉장히 드문 데 말이다. 복잡한 형태들이 지질학적 시간 척도로 볼 때 아주 짧은 기간 내에 등장한 것은 5억 2천5백만 년 전에서 5억 5백만 년 전 사이의 일이었고, 지구 전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다. 동물 진화의 빅뱅이다. - P184
사실 캄브리아기 화석들은 동물의 화석이라기보다 무지막지하게 강한 지질학적 힘들에 납작 눌린 동물들의 자취의 화석이라 보는게 옳다. 그러나 다행히도 발생학이 극적으로 발전한 덕택에 우리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나고 확장된 과정에서 유전자들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이보디보라는 학문은 오래전에 죽은 형태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능력을 지닌 셈이다. 이보디보가 알려준 가장 놀라운 메시지는 크고 복잡한 동물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자들이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현실에 실체가 드러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크고 복잡한 형태가 등장하기 약 5천만 년 전부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유전자 수준에서의 잠재성은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유전자툴킷 자체는 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신체 설계가 눈 깜박할 새에 등장하고 변화했다는 엄연한 현실을 보면 동물 발생은 분명 크게 진화하였다. 캄브리아기 동물군들을 보고 제일 먼저 지적하게 되는 점은 반복신체부속의 종류와 수가 다양하게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윌리스턴의 법칙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 현상은 배아 지리의 변화로 일어난것 같다. 툴킷 유전자들의 좌표 변이, 특히 배아 내 혹스 유전자 발현 위치의 변이는 상이한 신체 형태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런 변이는 유전자 스위치를 통해 일어난다. 캄브리아기에 벌어진 사건은 바로 스위치들의 진화였다. 이후 여러 주요한 동물강(動物綱)들이 잇달아 진화한 것도 스위치의 진화 덕분이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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