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그 당시 마콘도는 선사시대의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河床)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던 강가에 진흙과 갈대로 지은집 스무 채가 들어서 있는 마을이었다. 세상이 생긴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이 아직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칭하려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야만 했다. - P11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동양적인 눈빛에, 슬픈 분위기에 둘러싸인 침울한 표정을 지닌 남자였다. 그는 활짝 펼쳐진 까마귀 날개처럼 커다란 검은모자를 쓰고, 수세기의 녹청(綠靑)이 끼어 우중충해진 벨벳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한한 지식과 신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간적인 부담과 자신을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에 얽매이게 만드는 삶의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늙어 가는 고통에 대해 불평했고, 가장 하잘것없는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었으며, 괴혈병으로 이가 다 빠져 버렸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웃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았던 어느 찌는 듯한 정오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자기와 그 사이에 위대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아이들은 멜키아데스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이야기에 감탄했다. 그 당시 다섯 살밖에 안된 아우렐리아노는, 그날 오후의 더위로 녹아 내린 기름기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운데 깊은 어둠에 둘러싸인 상상의 세계를 오르간 소리처럼 깊이 있는 목소리로 밝히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던 멜키아데스의 모습을 평생 기억해야 했다. 아우렐리아노의 형 호세 아르카디오는 그 경이로운 이미지를 마치 유전시켜야 할 기억이나 되는 듯 자신의 모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 P19

그때 온 집시들은 새로운 집시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나라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젊은 남녀들로서, 매끄러운 피부와 고운 손은 아름다움의 표본이었다. 그들의 춤과 음악은 이탈리아 아리아를 부르는 온갖 색깔의 앵무새, 탬버린 소리에 맞춰 황금 알을 백여 개나 낳는 암탉, 남의 생각을 알아맞추는 훈련된 원숭이, 동시에 단추를 달기도 하고 몸의 열을 내려 주기도 하는 만능 기계, 나쁜 기억을 잊게 해 주는 기구,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해 주는 고약, 그 외에 수천 개에 이르는 독창적이고 기이한 발명품들과 더불어 거리를 왁자지껄한 즐거움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려, 호세 아르카디오가 그 모든 것을 다기억할 수 있는 기억 장치를 발명하고 싶어 했을 정도였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마을을 뒤바꿔 버렸다. 왁자지껄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터로 정신이 멍해진 마콘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맸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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