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보이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언 이후 그야말로 지랄 맞은상황에 처해 있었다. 후드에서 태어났다는 건 원래 후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치즈 보이는 이미 바깥세상을 구경했다.지만, 충분한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존재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세상에 나아갈 수단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남아공의 실업률이 통계적으로 ‘낮았다‘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다. 모두들 노예로 고용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 이후에는 누구에게나 최저 임금을 줘야 했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갑자기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인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치솟았고, 50퍼센트에 이르기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였고, 후드 출신이고 특정한 말투를 쓰면 판매직조차도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아공의 흑인 거주구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들이 직장에 가거나 말거나 한 상태고, 밖에 나가 골목에서 노닥거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자유였고, 고기를 낚는 법도 배웠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낚싯대를 주지 않았다. - P303

후드에서의 삶은 또한 스트레스도 적고 편안했다. 모든 정신적에너지가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데 집중되다 보니,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 후드에서는 엄마네 집에 얹혀살며 남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마흔 살 남자라고 해도 업신여김을 당하지않았다. 후드에서는 결코 자신이 실패작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아도 됐다. 왜냐하면 언제나 자신보다 더 못한 누군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또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을 가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도 해도, 자신보다 특별히 더 나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기력한상태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줬던 것이다.
후드에는 집단의식도 충만했다. 약쟁이부터 경찰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서로를 알았다. 사람들을 서로를 보살폈다. 동네의 어떤 아줌마든지 뭘 해 달라고 시키면 반드시 그러겠다고 해야 했다. "이것 좀부탁해도 될까?"란 말이 관용구처럼 쓰였다. 마치 모두가 내 엄마고 내가 모두의 자식이라도 되는 듯이.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
"네, 뭐가 필요하신데요?"
"가서 우유랑 빵좀 사다 줬으면 좋겠는데."
"네. 문제없어요"
그리고 그 아줌마가 돈을 주면 가서 우유와 빵을 사다 준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다거나 특별히 돈 드는 게 아니라면 거절하지 않았다.
후드에서 가장 큰 원칙은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혼자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돈이 좀 있어? 그럼 왜 사람들을 돕지않는 거야? 동네의 늙은 노파가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맥주를 살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 병씩 돌렸다. 누구든 성공하면 커뮤니티에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되돌려 줘야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흑인 거주구는 치안 유지도 자체적으로 했다. 누군가가 도둑질하다 붙잡히면 동네가 처리했다. 누군가가 남의 집에 침입하다 잡히면 동네가 처리했다. 여자를 강간하다 잡히면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경찰에 잡히길 기도해야 했다. 여자가 맞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았다. 맞는 데는 따져야 할 점들이 너무 많았다. 왜 싸웠나? 누구 책임인가? 누가 시작했나? 하지만 강간은 강간이고, 도둑질은 도둑질이었다. 그건 커뮤니티를 훼손하는 짓이었다. - P318

후드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했지만, 편안함이란 위험할 수도 있는것이다. 편안함은 등을 기댈 마루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제한하는천장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 패거리 중 G 역시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직장이 없는 한량이었다. 그러다 괜찮은 옷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다. 매일 아침이면 그는 일하러 나갔고, 나머지 우리들은 그를 놀려 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나가는 그를 비웃었다.
"오, G. 멋진 옷을 입었는데!" "야, G, 오늘도 백인 남자 만나러 가는 거야?" "야, G. 도서관에서 책 빌려 오는 거 잊지 마라!"
G가 거기서 일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우리가 벽돌담위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G가 슬리퍼에 양말만 신고 나왔다. 일하러가는 옷차림이 아니었다.
"여, G. 어떻게 된 거야? 직장은 어쩌고?"
"아, 그 일 그만뒀어."
"왜?"
"내가 뭘 훔쳤다면서 해고했어."
나는 그가 일부러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 패거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스스로 자기 앞길을 막은 거라는.
후드는 자체적인 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절대 누구를버려두지도 않지만, 절대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는다. 떠나려는 선택을하는 순간, 당신을 키워 주고 절대 배신하지 않았던 공간을 모욕하는셈이 된다. 이제 그 공간은 당신의 적이 되고 만다.
후드에서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곧 떠나야 할 순간이다. 후드가 잘나가는 당신을 잡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다. 한 남자가 물건을 훔쳐 당신의 차에 몰래 넣어 두고 경찰이 그 물건을 찾아낼 것이다. 당신은 견딜 수 없다. 물론 당신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 잘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후드의 친구들을 멋진 클럽으로 데려가면,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누군가가 싸움을 시작하고 당신 친구 중 한 명이 총을 꺼내고 누군가가 총을 맞는 것이다. 당신은 멍하니 서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묻는다.
이게 후드의 방식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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