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홀로코스트 Holocaust를배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없다.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왜 발생했으며 그 역사적 무게와 의미는 무엇인지도 배운다. 그 결과 독일인들은 자라면서 적절한 역사 인식과 사죄하는 마음을 갖추게 된다. 영국 학교에서도 식민주의를같은 방식으로 다룬다. 이들 나라의 아이들은 이렇게 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이 모두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참 부끄러운 역사네.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성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라고 배우지 않았다. 우리가 그 역사를 배운 방식은 미국과 같았다.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의 역사를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 "옛날에 노예 제도가 있었고, ‘짐 크로우‘라는 흑인 차별 정책이 존재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등장했지. 그리고 이제는 다 끝났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나쁜 제도였어.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모두 사실이지만, 감정적 혹은 도덕적 영역은 거의, 혹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마치 대부분이 백인인선생님들이 죄다 이런 지시를 받기라도 한 듯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애들을 화나게만들지는 마시오." - P267
앤드루는 백인이었다. 그의 가족은 교육, 자원, 컴퓨터를 모두 누렸다. 몇 대에 걸쳐 그쪽 사람들이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동안 이쪽 사람들은 움막에 모여 노래를불렀다. 2 곱하기 2는 4요. 3 곱하기 2는 6이요, 랄랄랄랄라." 그의 가족이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내 가족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내게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지만, 지식과 자원이 없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사람들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가져요! 스스로 뭔가를 이뤄 내라고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대체 뭘 가지고 그 뭔가를 이뤄 낼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즐겨 말한다. "물고기를 잡아 주면 하루치 식량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요,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의 식량을 해결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지 않은 말은 이것이다. "물론 낚싯대까지준다면 더 좋겠지만." 이것이 앞의 비유에서 생략된 부분인 것이다. 앤드루와 일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자, 여기 네가 필요한 게 있고 이건이렇게 작동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 줄 특권층의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앤드루가 내게 CD 라이터를 주지 않았다면 재능만으로는 절대 무엇도 이뤄 낼 수 없었을 것임을. 사람들은 말할것이다. ‘아, 그거 뭐 거저 얻은 거네." 아니다. 그걸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없었다면 나는 가능성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 P277
나는 홀로코스트가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잔혹 행위였다고 주장하는 서구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물론, 홀로코스트는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궁금할 때가 많다. 과연 콩고에서와 같은아프리카의 잔혹 행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유대인들은 가졌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없는 것은 기록이다. 나치는 꼼꼼하게 기록했고, 사진을 남겼고,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 전해 내려왔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얼마나 됐는지 아는 이유는 히틀러가 그 숫자를 셌기 때문이다. 600만 명이 죽었다. 우리 모두 그 숫자를 보면서 경악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상대로 행해진 잔혹 행위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명확한 숫자는 없이 오직 추정만이 존재한다는 걸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추정만으로는 경악하기가 어렵다. 포르투갈과 벨기에가 앙골라와 콩고를 약탈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학살한 흑인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콩고에서 고무를 수확하다 죽은 흑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트란스발Transvaal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부의 옛 주명 - 옮긴이)의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죽은 흑인들의 수는?」 - P286
"이건 누구를 모욕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게 우리 본래 모습이란말이에요!" "여기서 꺼져요! 당신네들 구역질 나!" 역시나 그 말이 나왔다. 당신네들.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여자는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것이다. 흑인 남성이 성적인 춤을 추는 꼴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거다. 내가 장비를 챙기는 동안에도우리는 말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들어 봐요. 우리는 이제 자유라고.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어. 당신들이 우리를 막을 순 없다고요." "우리들은 당신네 같은 사람들과 이전에도 맞서 봤고, 지금도 여전히 당신네들을 멈출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은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를 언급한 것이었지만 내게는 다른 말로 들렸다. 우리에게는 남아공의 유대인들도 그저 백인일 뿐이었다. 내 귀에는 백인들이 우리를 억압해 왔고 다시 또 억압하겠다는 웬 백인 여자의 협박만이 들렸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절대 우리를 다시 막을 수 없어요." 그리고 여기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다시는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제 넬슨 만델라가 있기 때문이지! 그분이 우리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 "뭐라고요?"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다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엿이나 드셔. 당신네 행사도 엿이나 먹고, 당신네 학교도 엿 먹어. 당신네들 전부 엿이나 퍼먹으란 말이야! 가자,얘들아!" 우리는 그냥 걸어 나오지 않았다. 춤을 추며 나왔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면서 길가까지 춤을 추며 나왔다. "고 히틀러! 고 히틀러! 고 히틀러! 고 히틀러!" 모든 게 다 히틀러가 너무 죽이는 춤을 췄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었는데 저 백인들이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탓이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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