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웨토에는 뭔가 신기한 면이 있었다. 비록 우리의 압제자들이만든 감옥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자결권과 통제권이 주어졌다. 소웨토는 우리 것이었다. 그건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염원을 품게 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빈민가를 빠져나오는 게 꿈으로 여겨진다면, 빈민가를 떠날 수 없는 소웨토에서 꿈이란 그 빈민가를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 P65

"이리 와라! 집 안에 악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행동해야 할 때였다.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밖에 나가 똥을 볼태우는 거였다. 마법은 그렇게 처리해야 한다. 마법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그 물체를 태우는 것이다. 우리는 마당에 나갔고, 엄마는 내 똥이담긴 신문지를 진입로에 두고 성냥으로 불을 붙여 태웠다. 그리고 임마와 할머니는 불타는 똥 곁에 서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소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악마가 주변에 있을 때는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 악마를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도에 참여하지 않는 집이 있으면, 악마가 우리 집을 떠나 그 집으로 가서 그 가족을 저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 사람 모두가 필요했다. 신호가 울렸다. 소집이 발령됐다. 내 작고 늙은 할머니가 문 밖에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긴급 기도 모임에 참석하라고 다른 할머니들을 불러냈다. "어서 와요! 우리 집이 마법에 당했어요!"
내 똥이 불타는 진입로에 서서, 늙고 가여운 할머니가 겁에 질려비틀거리며 거리를 쏘다니는 걸 보며,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진상을 도저히 내 입으로 자백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떨어질 체벌은? 하느님 맙소사. 매 앞에서 정직은 절대 최선의 방책일 수 없었다.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잠시 후 적어도 열 명 이상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성경을 옆에 끼고 줄줄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이 꽉찼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도 모임이었고, 우리 집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기도 했다. 모두가 원을 그리고 둘러앉아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기도는 강력했다. 할머니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고 웅얼거리고 말들을 쏟아 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손을 뻗어 나를 붙잡고는 원 중앙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트레버, 기도하렴." - P74

언어에는 정체성과 문화뿐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담겨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는 똑같다‘는 의미를 전한다. 언어에 장벽이 있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의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잘 알았다. 흑인들을분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우리들을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도나눠 놓았다. 반투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직 그들의 언어로만 가르쳤다. 줄루족 아이들은 줄루어로 배웠다. 츠와나족 아이들은 츠와나어로 배웠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우리들끼리 싸웠다. 우리들은 서로 다르다고 믿으면서.
언어의 위대한 점은,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우리는 똑같다‘고 설득시키는 데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종 차별은 우리가 피부색에 따라 서로 다르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인종 차별이 멍청한 덕에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인종 차별주의자이고 당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당신처럼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인종 차별적 선입관이 강화될 것이다. 그는 나와 다르고, 나보다 덜 똑똑하다는, 만약 한 뛰어난 과학자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왔는데 영어를 더듬거린다면 사람들은 말할 거다. "어. 나 저 사람 못 믿겠어." - P78

한번은 어느 가게에 들렀는데 우리바로 앞에 서 있던 가게 주인이 경비원을 쳐다보며 아프리칸스어로 말했다. "Volg daat suartes, netnou steel bulle iets(이 흑인들 따라다니면서뭐 훔치지 않는지 잘 살펴봐."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름답고 유창한 아프리칸스어로. "Hoekom volg jy nie daai swartes sodat jy hulle kan help krywaarna bulle soek nie(이 흑인들 좀 따라다니면서 물건 찾는 걸 도와주는건 어때요?"
"Ag.jammer! (아, 죄송합니다!)" 가게 주인이 아프리칸스어로 사과했다. 어처구니없는 부분은 그가 자신의 인종 차별적 행위에 대해서가아니라 단지 우리를 향해‘ 인종 차별을 행한 걸 사과했다는 점이었다.
"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이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인 줄 알았지 뭐요. 당신도 알다시피 흑인들은 훔치는 걸 좋아하니까."
나도 엄마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상대방이 쓰는 언어에 맞춰 동시 송출했다고 할까. 그냥 거리를 걷기만 해도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신 어디서 왔소?"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질문받은 언어와 억양을 똑같이 사용해 답했다. 그럼 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였다. "아,
알겠소 난 또 당신이 이방인인 줄 알았지. 됐소이다."
이 방법을 나는 평생 유용한 도구로 써먹었다.  - P87

아파르트헤이트 이전에 정규 교육을 받는 남아공 흑인을 가르친 건 대개사들, 원주민들을 크리스천으로 만들고 서구화시키는 데 열성적인 외국인들이었다. 미션 스쿨에서 흑인들은 영어, 유럽 문학, 의학, 법 등을 배웠다. 넬슨 만델라부터 스티브비코Steve Biko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주요 흑인 리더들이선교사들에게 교육받은 건 우연이 아니다. 배운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혹은 적어도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도록 만들려면 흑인들의 마음을 불구로 만들어야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정부는 ‘반투 학교Bantu schools‘를 세웠다. 반투 학교에서는 과학도, 역사도 인권도 가르치지 않았다. 계량학과 농업을, 감자 개수 세는 법, 도로 포장하는 법, 나무 베는 법, 밭가는 법을 가르쳤다. 정부는 말했다. "미개한 반투들에게 역사나 과학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건 풀을 뜯어 먹을 수도 없는 초원을 구경시키는 것처럼 그릇된 길로 인도할 뿐이다." 그들은 매우 솔직했다. 왜 굳이 노예를 가르쳐야 하나? 오로지 땅만 파는 게 삶의 목적인 사람에게 대체 왜 라틴어를 가르친단 말인가?
미션스쿨도 이 새로운 커리큘럼을 따라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폐쇄되었다. 대부분이 문을 닫는 바람에 흑인 아이들은 다 쓰러져 가는 학교 교실에 빽빽이 모여 이제 겨우글눈을 깨우친 교사에게 수업을 받아야 했다.  - P96

미션스쿨과 반투 학교로 대변되는 남아공의 교육은 우리를 압제하던 두 백인 그룹, 영국인들과 아프리카너들의 차이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영국식 인종 차별과 아프리카식 인종차별의 차이점은, 적어도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뭔가 갈망할 대상을제공했다는 것이다. 만약 똑바른 영어를 쓰고 제대로 차려 입을 수 있다면, 스스로를 영국식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갈망. 그러나 아프리카너들은 그런 가능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식 인종 차별이 "만약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가 있다면, 그건 행여라도 사람일지 몰라"라면,
아프리카식 인종 차별은 "대체 왜 원숭이에게 책을 준단 말이야?"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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