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것,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은, 그뒤에 이어진 폭력 사태였다. 가끔 당시 민주주의가 아파르트헤이트에승리했다며 이를 ‘무혈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그건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흑인들의 피는 거리에 흘러 넘쳤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됐으니 우리는 이제 주도권이 흑인들에게 넘어오리란 걸 알았다. 문제는 ‘어느 쪽 흑인이냐‘였다. 잉카타 자유당측이Inkatha Freedom Party 측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서로 권력을 다투면서 폭력 사태가 빈발했다. 이 둘 사이의 정치적 역학 관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줄루와 코사의 대리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쉽다. 잉카타는 대부분 줄루족으로, 매우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이었다. 한편 ANC는 여러 다른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을 띠고있었으나 그 당시엔 주로 코사족이 리더를 맡고 있었다. 이 둘은 평화롭게 힘을 뭉치는 대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다. 넥레이싱 Necklacing 처형이 흔하게 벌어졌다. 넥레이싱이란 사람의 팔을 결박하고 고무 타이어를 몸통에 씌운 후,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붙여 산 채로 화형시키는 것이다.  - P26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제대로 못 들었다. 꾸벅꾸벅 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호등이 가까워졌다. 버스 기사가 차로를 살피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순간, 엄마는 손을 뻗어 버스 문을 밀어제치더니, 나를 잡아 있는 힘껏 밖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앤드루를 감싸 안은 채 몸을 둥글게 말아 나를 따라 뛰어내렸다.
아프기 전까지는 꿈인 줄만 알았다. 쾅! 나는 도로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쳐졌다. 엄마는 바로 내 옆에 떨어졌고 우리는 데굴데굴 구르고 굴렀다. 잠이 확 달아났다. 반쯤 잠들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난 겨우 멈춰 서긴 했지만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는, 이미 두 발로 서 있었다. 나를 향해 엄마가 소리쳤다.
"뛰어!"
그래서 나는 뛰었다. 엄마도 뛰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엄마보다 빨리 달리지 못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뭘 해야 하는지 나는 그냥 알았다. 항상 폭력이 잠복해 있고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며몸에 밴 동물적 본능이랄까. 흑인 거주구에서,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이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대동하고 등장하면 나는 알았다. ‘숨을 곳을 찾아 뛰어야 한다. 뛰어서 숨어야 한다.‘ 다섯 살짜리지만 알았다. 다른 삶을 살았다면, 달리는 미니버스에서 내던져져서 당황했을지 모른다. 멍청이처럼 멀뚱히 서서 ‘무슨 일이에요, 엄마? 왜 내 다리가 이렇게 아프죠?"라고 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가 ‘뛰어‘라고 했으니 나는 뛰었다. 사자로부터 도망치는 가젤처럼 나는 뛰었다. - P32

대영 제국이 쇠퇴하면서 아프리카너들은 남아공이 자신들의 적법한 유산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들썩이며 증가하는 다수의 흑인들에 맞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더 새롭고 더 튼튼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공식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전 세계의 인종 차별 제도들을 연구했다. 호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을 방문해서 어떤 제도가 효과적이고 그렇지 않은지 파악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발간했고, 정부는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인종차별 시스템을 설계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흑인들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과 감시 시스템으로구성된 일종의 경찰국가 제도였다. 그 법률전문은 3000페이지가 넘고 무게가 거의4.5킬로그램에 달하지만, 그 요지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미국은 원주민들을 ‘분리시키고 ‘노예화‘한 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제거해 버렸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동일 집단의 사람들에게 행해졌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바로 아파르트헤이트였다. - P36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입증해 주지만, 나는 내 부모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였다. 내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건 오직 실내뿐이었다. 집을 떠나면 그는 우리와 길 건너에서 걸어야 했다. 엄마와 나는 늘 주버트 파크에 갔다. 요하네스버그 중앙 공원에는 아름다운정원과 동물원, 사람 크기의 말을 갖춘 대형 체스판이 있었다. 한번은 내가 막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 아빠와 함께 그 공원에 갔던 적이 있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다. 공원에서 그는 나와 멀찍이 떨어져 걷고있었는데, 내가 쫓아가면서 이렇게 외쳤단다. "아빠! 아빠! 아빠!"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그는 도망쳐 버렸다. 나는 그게 아빠를 쫓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와도 같이 걸을 수 없었다. 피부색이 밝은 아이가 흑인여자와 함께 다니면 여러 의문들이 제기된다.  - P48

히포와 특별 기동대를 처음 본 것은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이었던 때였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마침내 붕괴된 이후였다. 그전까지는한 번도 경찰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예 내가 경찰의 눈에 띌 일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웨토에 오면 할머니는 나를 절대 밖에나다니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했다. "안 돼, 안돼지, 안 돼. 얘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가선 안 돼." 벽 뒤에서, 마당에서는 놀 수 있었지만, 거리에서는 안 됐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놀고 있는 그 거리에서는 내친척들, 이웃 꼬마들, 걔네들은 밖으로 나가 맘대로 배회하다가 해가 질무렵에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제발 밖에 나가게 해 달라고졸랐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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