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문명과 현대화와 서구화를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페이리는 내게 말했다. 「그러나 서양이 중국보다 앞서서 새로운 방식에 도달한 것은 근대에 와서였습니다. 그전에는 중국이 더 발전된 문명이었죠.」 중국인들은 서양이 산업화를 서양 고유의것으로 여기는 태도에 진저리를 낸다. 상하이의 기자 보샤오보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공장을 보면 서양 문물이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백 년 전부터 공장이 있었습니다. 서양은 우리 나라에서 화약을 접한 뒤 당장 그것을 가져다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독립혁명이나 제1차 세계 대전을 중국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자동차를 몰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서구식 생활양식이 아닙니다. 그냥 현대적 생활 양식입니다.
서양은 또 수묵화가 아닌 미술은 죄다 자신의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중국 예술가들은 서구에서 발달한 시각 언어를쓴다. 하지만 종이는 원래 아시아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종이에 그린 모든 그림을 아시아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 모든 유화는 서구식이라고 불리는가? 왜 서양은 개념 예술, 설치미술, 모더니즘, 추상 미술을 모두 자기 것으로 여기는가? 홍콩의 딜러인 앨리스 킹은 귀화 양식을 현대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중국 그림이라는 게 정확히 뭐죠? 중국에 있는 사람이 그린 그림은 다 중국 그림인가요? 인종적으로 중국인인 사람이 그린 그림은 다 중국 그림인가요? 아니면 양식의 문제인가요? 서양인도 한지와 붓을 써서 그리면 중국 그림인가요? 서양에서는현재 중국 작품들을 곧잘 단순한 모방작으로 폄하한다. 이에 대해 위안밍위안 예술가 마을에 사는 화가 왕인은 말했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우리나라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서양의 눈에 진부해보이더라도」 - P186

왕도 끄덕였다. 「옌 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법대로 하자고 주장함으로써 관행에 계속 불복하는 것입니다. 옌 씨는 강한 개인이라는 이유로 구타당했던 것이고, 역시 개인으로서 그 사건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겁니다. 이기든 지든,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런생각을 알리고 싶습니다. 개인도 항의할 수 있다는 것, 신념을 지킬방도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 나는 쑹쑹의 이발을 떠올렸다. 이제야 그 퍼포먼스가 왜 그렇게 큰 분노를 일으켰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퍼포먼스가 어떤 측면에서 성공이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사소한 사건이 어떤 점에서는 폭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은 자신의 위험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한 성공한다. 중화 인민 공화국에서 개인성이라는 개념, 라오 리가 전형으로서 체화하고 있는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거의 들어보지 못한 생각이다. 그런데 만일 이 개념이 중국의 방대한 인구에게 널리 스민다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결정권을 얻고 싶어 할 것이고, 그것은 중앙 정부의 종말이자 통제의 종말이자 공산주의의 종말일 것이다. 중국의 종말일 것이다. 중국에 운이 따른다면, 휴머니스트들과 절대주의자들의 이 싸움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결정적으로 이겨 버리는 것은 비극일 터이기때문이다. 불의는 물론 끔찍하다. 그러나 중국의 종말 역시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덩샤오핑도, 라오 리와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도. - P194

서양미술계는 소련/러시아 미술보다 중국 현대 미술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그 수용은 서양문화사를 재고하는 작업, 즉 유럽 및 미국 문화가 아시아에 수출한 것 못지않게 아시아로부터 배운 것도 많다는 점을 깨닫는 작업과 시기가 맞물렸다. 아시아가 서양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피상적으로는 칠기나 자기를 애호하는 취향에 머물러 있지만, 철학적으로는그보다 더 심오하다. 미니멀리즘과 형식주의는 아시아 사상이다. 일시성을 칭송하는 아시아의 전통 없이 플럭서스Fluxus 운동이 가능했을까? 우리가 현대 아시아 미술을 모더니즘 미술의 표절로폄하하던 것은 이제 그만두었으니, 다음으로는 모더니즘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아시아를 표절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서양화가들이 서예의 붓질에서 약간의 기법을 배운 것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동양의문자 기반 언어에서 배운 최고의 가르침은 은유적 풍성함으로 언어와 시각적 재현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방법이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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