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끝이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두 번 다시 그 일을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차를 마시며 내 쪽을 보고 미소 지었고 손잡이에 걸쳐져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 미소는 내가얻어낸 보상이었다. 재스퍼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보상이듯이 말 잘 듣는 개라면 만족하고 엎드려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재스퍼가 되었다.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핫케이크를 한 장 집어 반으로 나눈 뒤 개들에게 주었다.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온몸의 기력을소진한 듯 피곤했다. 맥심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신문에만 열중한채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핫케이크를 자르느라 손가락에 버터가 묻어 엉망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손수건이 나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골똘히 그 레이스 달린 작은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리스가 홀의 돌바닥에서 그걸 집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비옷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손수건을 뒤집어보았다. 옷에서 보푸라기가 묻어 지저분했다. 오랫동안 그 비옷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쪽 끝에 길고 비스듬한 R 자가 W 자와 함께 겹쳐서 수놓여 있었다. 다른 글자들을 압도하는 바로 그 R이었다. R 자의 꼬리는 수건 바깥까지 뻗쳐나가려는 듯 길었다. 하찮은 손수건 한 장이었으므로 원래 주인은 대충 뭉쳐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렸으리라.
그러니까 나는 그 손수건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후 처음으로 그비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레베카는 길고 늘씬하고 어깨가 나보다넓었다. 내게 그 옷은 너무 크고 길었으며 소매가 손까지 내려왔다. 단추 몇 개는 떨어지고 없었다. 레베카는 단추가 없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망토처럼 어깨에 두르거나 앞자락을 연 채 헐렁하게입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을지도 모른다.
손수건 위에 분홍색이 묻어 있었다. 립스틱 자국이었다. 이 손수건으로 립스틱을 문질러 지운 뒤 뭉쳐서 이 주머니에 넣었던 것이다. 나는 버터 묻은 손을 그 손수건에 닦았다. 그러자 희미한 향기가 올라왔다. 어디선가 맡아본 향기였다. 나는 눈을 감고 기억을더듬었다. 알 듯 모를 듯했다. 금방 들이마셨던, 내 손에 묻은 향기같았다.
다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손수건에 희미하게 남은 냄새는 행복의 계곡에 핀 흰진달래 꽃잎에서 나는 바로 그 향기였다. - P182
"프랭크, 당신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요. 왜 제가 그런 질문을던졌는지 이상하겠죠. 쓸데없이, 심지어는 잔인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다고 여길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다만가끔씩 저만 불리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곳 맨덜리에사는 것도 낯설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힘들고요. 오늘 오후처럼 답방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제대로 해낼까 의심스럽다는 눈길을 보내죠. ‘대체 맥심은 뭘 보고 저 여자랑 결혼한 걸까?‘라고 말하는 듯 말이에요.
그러면 저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져요. 해서는 안 될 결혼을 했다는 생각,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저 여자는 레베카와 정말 다르군‘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저도 안다고요"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