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러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능력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응성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빨리 더 바람직한 형태로 스스로 얻어 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안다. 한편 이들이 갖지 못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성공을 견주어서 판단하는 데 배경이 될 큰 그림, 그리고 성공에는 책임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인식이다. 옛 소련은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장악된 나라였고, 결국에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의미를 잃었다. 한편 오늘날 젊은세대의 유력한 구성원들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완곡어법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본주의란 누구나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스스로 낚아채야 하는 체제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 세월이 십오년 전이었다면, 이들 중 많은 사람은 기성 체제를 악으로 여기고 그에 대항하여 싸웠을지도 모른다. 아르톰 트로이츠키는 약간 씁쓸한 듯이 내게 말했다. 「영웅적인 시절은 끝났습니다. 나도 만약 현재의 젊은 세대로 태어났다면 영웅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 P143
새로운 러시아의 혼돈을 낳는 진정한 원인은 경찰의 허약함도, 마피아의 압도적인 영향력도, 헌법 수정의 어려움도, 옐친의 불안정함도, 악화하는 인플레이션도, 서구 정부들의 순진한 원조 분배정책도, 식량 부족도 국영 공장의 비효율성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그동안 모두가 공익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아 왔던 사회에서 이제 모두가 자신만을 챙기면 된다고 보는 가치 체계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하고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수많은 의제들이 우연한 상황에 따라 잠시 이렇게 정렬했다가 다시 저렇게 정렬했다가하는 나라에서는 일관성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 진짜 문제는 그것이다. - P144
소련 시절 러시아 정교회는 조직이라는 평판을 누렸지만(그도교회가 KGB에 연루하기는 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깡그리 사라졌다. 교회는 이제 푸틴이 내세운 의제들에 공공연히 힘을 실어 준다. 1991년에는 러시아 인구 중 자신을 신자로 규정한 사람이 3분의 1이었지만 2015년에는 그 수가 4분의 3이 넘었다. 그러면서도 인구의 4분의 1가까이는 종교가 사회에 보다 질을 더 많이 끼친다고 생각하며 신자 중에저도 3분의 1은신을 정말로 믿진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물며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의 지도력을 <기적>이라고 칭송하면서 푸틴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주의는 법치의 붕괴와 세상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문에 따르면 총대주교는 개인 자산이 40억 달러쯤 된다고 하고 3만 달러짜리 시계와 모스크바의 펜트하우스를 자랑한다고 한다. 그는 또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상업적 용도로 대여해 준다. 푸틴은 정교회 오토바이 갱단인 <노치니예 볼키>와 자주 함께 사진을찍었다. <성스러운 러시아>라는 또 다른 정교회 스킨헤드 갱단의 지도자 이반 오스트라콥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신성 러시아의 적은 사방에 있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의 악마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의 신성한 장소를 보호해야 한다. 경찰은 그런 공격에 대처할 여력이 없다. 내가 체첸전쟁에서 싸우고 돌아왔을 때, 조국은 매춘, 마약, 사탄숭배자 등등 더러운것들 투성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가 오름세를 탔다.> 그 갱단은 록밴드 푸시라이엇에게 선고된 가혹한 처벌에 항의하던 시위대 중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는데, 애초에 푸시라이엇이 체포된 것은 모스크바의 한 성당에서 연 공연에서 푸틴에 반대하는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갱단은 자신들이 중상을 입힌 사람에 대해 <그는 우리의 신성하고 성스러운 것들을 모욕했다>라고 말했다. - P148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2011년과 2012년 선거 후에 항의 시위를 조작했다. 주동자는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활동가 일리야 야신, 좌파 전선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역의회 의원 보리스 넴초프 등이었다. 2015년, 나발니와 우달초프는 가연금에 처해졌다. 넴초프는 모스크바의 한 다리에서 등에 총을 맞고 죽었는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것에 항의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지 몇 시간 후였다. 모스크바 정치 기술 센터의 게오르기 치초프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 편> <국가의 반역자들>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위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거스르는 꼴이 되니까요.」 한때 활발한 시위자였던 33세의 니키타 데니소프는 이렇게 말했다. 「시위 행진이 아무 소용 없을뿐더러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죠. 29세의 옐레나 보브로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섰지만, 접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뿐이었어요 권력자들뿐아니라 친구들과 친척들에게서도 냉담함이 러시아의 국민 오락이 된 모양이다. - P152
우연히 이 광경을 지켜본 웬 서양인이 내게 어깨를 으쓱하면서중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공개적으로 싸우는 시도가 늘 이렇게 실패로 돌아간다고 그래서 참 안됐다고 말했다. 그 서양인은 중국에서 국가에 반대하는 모든 예술가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유선거와 헌법을 지지할 것이라는 서양인다운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논리는 중국과 중국인을 오해한 데서 나온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경우, 그런 결론은 요점 파악에 실패한 판단이었다. 사실 쑹의 이발은 대성공이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여기에는 과거에는 현재에는 민주주의 시위에 활발히 나선 이른바<지하 세계> 전위 예술가들도 포함된다- 중국에 서양식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한갓 실수일뿐더러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을 좋아한다. 그들은 물론 서양의 돈과 정보와 힘을 갖고 싶어하지만, 중국의 문제에 서양의 해법을 적용하기는 원치 않는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도 알고 보면 중국식 해법의 추진을 요구하는 것일 따름이다. 동양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그게 관례라고 내게 말해 준 예술가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 P155
중국에서는 개인으로서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급진적인 일이다. 그런 태도는 중국인들이 늘 똑똑히 의식하고 있으며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5000년 역사, 그들이 자주 (그리고 가끔은 격렬하게)수정하지만 결코 내버리진 않는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중국의 전위 예술계 멤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독립적인 개인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은우스꽝스러운 짓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예술적 기예란 그들이서양식의 천박한 사익 추구라고 여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에서 나온다. 그들의 어떤 행동이 서양인의 눈에는 중국의 획일적 전통으로부터 의절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전통을 살살 부추겨서 더욱 진화시키려는 요량으로 한 발짝만 멀어진 것에 가깝다. 중국은 많은 문제와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기능하고 있으며, 지식인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는 그 사실이 서양의 민주주의 개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상 파괴적인 예술가들조차도 덩샤오핑 정부에 몸서리칠지언정 그체제의 작동에는 대체로 놀랄 만큼 만족해한다. 중국 전위 예술계의 반항적 행동도 그 체제 내에서 유효할 뿐, 서양의 체제 내에서 해석되도록 기획된 것이 아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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