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이 앞으로 나가 서로 팔짱을 꼈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앤털이 메시지를 말하면 귀환병을 에워싼 민간인들이 따라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그 후 앤털은다시 한번 청중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식을 시작할 때 귀환병들이 은쟁반에 켜두었던 촛불을 들게 했다. 앤디의 쟁반에는 서른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가 요청한 공습에서 살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촛불이었다. 그날 의식을 마치고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요먼스와 앤털은 청중의 참여가 이 의식의 핵심이라고 나에게 설명했다. 이사회가 점점 전쟁에 거리를 두고 앤디 같은 귀환병이 전쟁의 대가와 결과를 혼자 짊어지는 상황이 도덕적 외상을 더욱 악화시키고있다고 했다. 앤털은 도덕적 외상을 치유하려면 미국의 전쟁이 자국 병사만이 아니라 이라크인 등 다른 나라 민간인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과 대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16
어느 날 칸다하르 비행장에서 의식을 치르던 중 앤털은 저 멀리서 드론들이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장송 나팔 소리 속에서 전사자의 이름을 경건히 호명하는 그 의식의 위엄과 피해자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드론 전투의 비밀주의 사이의 간극이 그를 괴롭혔다. "뭔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말했다. 2016년 4월, 앤털은 장교직을 그만두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어 "지구상 어디에서든, 어느 때에든, 누구든 죽일 수 있고 그 이유는 비밀로 부치는" 권한을 미 행정부에 부여하는 "무책임한 살인" 정책을 자신은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후 하트퍼드신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앤털은 현 상황의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을 분석했다. 드론 전투에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특수 작전 부대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확대되는 동안 민간인은 "그들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덜 알고, 위험을 덜 무릅쓰고, 그래서 덜 신경 써도 된다. 그결과 "사회가 모르는 척하거나 잊으려는 고통을 귀환병이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와중에 미국 군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 주둔해 있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재원과 막강한 살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 P217
내용은 평범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성씨 목록, 이지역의 다양한 방언과 부족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자료를 읽다 보니 거북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헤더를 덮쳤다. 그때까지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기초훈련 중에 시청한 지하디스트 비디오에서 본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 비디오는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이슬람교 테러리스트의 사악한 잔혹 행위를 강조하는 끔찍한 영상들이었다. "난 거기 사람들은 다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생각했어요." 헤더가 말했다. 이런 감정은 영상 분석을 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가 감시하는 목표물에겐 이름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헤더는 그들의 얼굴조차 볼수 없었다. 드론 영상으로 분간할 수 있는 것은 몸의 흐릿한 형체정도였다. 이따금 헤더는 동료들에게 저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실은 사람 모양의 생강 쿠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 후 몇 달간 헤더는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들, 그러니까 집의 부서진 벽을 고치는 남자, 화롯가에 둘러앉은 가족 등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면의 의구심과 씨름하기시작했다. 자신이 영상으로 지켜본 임무 중에 많은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테러리즘과 연관된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죽지 않았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헤더가 목격한 어느공습에서 목표물은 박격포를 든 남자로 보였는데, 공습 후에 확인해보니 사망자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어르던 여자였던 적도 있었다. - P224
헤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병사의 고통을 못 알아보는 시위대의 무지만이 아니었다. 헤더는 우월감을 내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거슬렸다. 이것은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된 인상이었다. 코드 핑크 시위대에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많다. 토비 블로메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반면 드론 부대에는 그런 사치스러운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헤더처럼 침체된 시골이나 척박한 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전쟁 때 일부 귀환병이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던 유복한 집안의 대학생 자제들에게 낙인찍히는 기분을 느꼈던 것처럼, 헤더는 자기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자기를 이래저래 판단하는 것에 쓰라린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 중에 내가 누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아끼는 사람이 죽게 되는 이 뭣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코드 핑크 시위대에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헤더가 보기에, 그들은 군대 같은 위계 조직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이 구호를 외치며 설득하려는 하급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 대해 발언할 권한이 거의 없다. "그들은 아무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 기지에 있는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전혀 없어요." 헤더가 격분하며말했다. - P230
베트남전쟁 때는 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사상자가 집중된 지역사회의 소득은 그렇지 않은 지역사회보다 평균 8200달러 낮았다. 징병제가 폐지된 뒤에 시작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는 그 차이가 (물가상승을 적용한 실제 가치로) 1만 1000달러까지 벌어졌다. 전쟁 중 부상에 있어서도 같은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지역에 비해 50퍼센트 더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부상당한 귀환병이 많았다는 점에서 가난한 지역 주민은 잘사는 지역 주민보다 전쟁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희생의 분담shared sacrifice‘은 미국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저옛날 식민지 시대부터 주장된 이상이다. 예를 들어 토머스 페인Thereas Paine은 조국을 위해 복무하라는 부름에 응답할 때는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어떤 계층의 삶을 영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선언했다. 그러나 현대 미국에서는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크라이너와 셴은 분석했다. 이들에 따르면 "군사적 희생에 있어 미국은 양면적이다." 전쟁의 부담을 떠안은 노동자계급이 있고 그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는 부유층이 있다. 이 불평등의 주요한 특징하나는 비가시성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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