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에 따르면, 많은 교도관이 자신은 경찰관보다 지위노동자계급 출가 낮다고 여겼고 경찰관이 교도관을 ‘보조 인력‘으로 취급한다고느꼈다. 또한 교도관 제복을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그 일을 하는 환경에 오염되었다"고 느꼈다." 요컨대 프랑스의 교도관은 플로리다주 · 콜로라도주의 교도관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일하는 환경이 대중의 바람과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것임에도 자신이 비천하고 도덕적으로 수상쩍은 일을 하는 ‘더티 워커‘라고 느꼈다(프랑스교도관에 대한 또 하나의 연구에서는 "교도관이 하는 모든 일은 사회가 시킨것인데도 교도관의 이미지가 이토록 부정적인 이유"를 물으면서 그 답은 교도소의 비참한 환경에 대한 사회의 ‘양심의 가책‘이 교도관에게 투사되는 ‘전치과정‘에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 P131
그럼에도 할덴 펭셀 운영진은 재소자가 가구를 갖춘 창살없는 방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곳 재소자들은 각종강의를 들을 수 있고 카메라의 감시 없이 돌아다닌다. 할덴 펭셀은 ‘역동적 보안‘이라는 교정 철학에 따라 강압이나 통제가 아니•라 신뢰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폭력성을 완화하고자 한다. 이곳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재소자를 수감하는 독방이 딱 하나 있다. 독방에 설치된 구속의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이런교도소는 미국의 최고 보안 교도소에 비해 운영비가 많이 든다고 비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또한 더 인도적인 교도소가재범률을 낮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자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할덴 펭셀의 목표는 재범 비율을 낮추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목표는 노르웨이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할덴 펭셀의 직원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습니다." 할덴 펭셀의 교도소장은 벤코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교도관들도 자신들의 직업을 좋아하고 그곳에서 은퇴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미국 교도소의 잔혹한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거기 갇힌 사람들의 존엄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교도관들이 공포와 위협을 동원하여 권위를 행사하지 않게 하고, 자신이 일하는 환경에 오염되었다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 P132
사회학자 존 프래트Join Pratt는 교도소 건축 양식이 점점 더 스파르타풍으로 바뀌고 교도소 부지가 사회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일이라고 분석한다. 이 건축적 지리적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설명은 교도소 관리자들이 디킨스 같은 관찰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는 것이다. 디킨스는 이스턴주립 교도소 운영진의 선의를 칭찬하면서도 그들이 재소자를 철저한 고립 상태에 가두는 "감옥식 훈육"을 고안했다고 규탄했다. 이 시대 미국의 개혁가들은 감금 요법이 재소자의 내적 성찰과 자기 규율을 증진한다고 믿었지만 디킨스는 이들의 주장에 아랑곳없이 독방 감금은 "지독한 처벌"이라고, 그 피해가 은폐되고 위장된다는 점에서 더욱더 교활한 처벌이라고 보았다. "나는 매일매일 그렇게 서서히 뇌의 신비를 조작하는 이 행위가 다른 어떤 종류의신체 고문보다도 헤아릴 수 없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 섬뜩한 징후와 증거가 육체의 흉터만큼 눈에 띄거나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디킨스는 이렇게 썼다. 19세기 미국의 형벌 체제는 교도소가 범죄자의 도덕을 고양시키고 그들을 준법 시민으로 교화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설계되었다. 20세기후반, 그보다 더 징벌적인 교정 철학에 의거하여 건축된 교도소는 외부인의 접근을 훨씬 더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 P137
그러나 교도소가 사회 변두리로 이동한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존 프래트에 따르면 이 변화는 "처벌의 문명화"(일반적인 의미의 문명화가 아니라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말한 문명화, 즉 불쾌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옮겨지고 은폐되는 과정인 문명화)가 득세한 결과였다. 표면적으로 엘리아스의 연구는 처벌 연구와 무관해 보인다. 그의 1939년 저서 《문명화과정》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식사 예절을 비롯한 행동 규범의 변화를 추적한 유럽 풍속사 연구로, 처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래 들어 범죄와 처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엘리아스의 통찰을 빌려 현대적 형벌 관행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문명화 과정‘의 핵심은 내적 통제의 강화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행위자들이 인간 행동의 ‘동물적‘ 측면을 억압하고 그런 행동을 타인에게 숨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을 뱉거나 방귀를 뀌는 등의 신체 기능이 불쾌한 것으로 여겨져 상류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죽은 동물을 자르는 행위는 원래 잔칫상에서 하던 일이었으나 점잖은 상류층이 지닌 "불쾌감의 한계치"가 높아지면서 "충격적인 일"로 여겨져 시야에서 숨겨졌다. - P139
신체에 대한 처벌이 ‘누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론상으로는 사회가 진보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엘리아스의 계승자들이 말하듯이 ‘문명화 과정‘은 잔인한 폭력이 실제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더 은밀한 장소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엘리아스의 연구를 형벌사회학에 처음 접목한 데이비드 갈런드orite Garland에 따르면,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문명화된 감수성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을 세탁하는 것도 가능하다(《문명화 과정》의 중요한 주제 하나가 바로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 과정으로, 같은 시기에 일반 시민이 허가 없이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자제력이 강조되었다). 《처벌과 현대 사회Punishment and Modern Society》 (1990)에서갈런드는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문명화된 처벌"의 계보를 제시한다. 범죄자를 교수대에 매달아 죽이는 행위가 야만적이라는 데에는 현대 미국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그런데 범죄자를 독극물주사(더 은밀한 살인 도구)로 죽이는 행위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합법이다. 재소자를 매질하는 행위는 분명 현대 미국인의 "불쾌감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반면에 재소자를 눈에 띄지 않는 별도의 "고립 장치"에 가두는 행위는 그렇지 않다. 디킨스가 1842년에 말한대로 독방 감금은 "그 섬뜩한 징후와 증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바로 그 이유에서 불쾌해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갈런드는 "일상적인 폭력과 고통은 은밀하게 수행되거나 위장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시야에서 제거되면 용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잔인성의 정도가 아니라 잔인성의 가시성과 형식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들의 외딴 위치는 우연이 아니다. 프래트에 따르면 서양 세계 전역에서 "문명화된 감옥은 보이지 않는감옥"이다. 시스템의 폭력을 은폐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이 담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훨씬 더 쉽게 모르는 척하거나 잊을 수 있게 하는 감옥이 문명화된 감옥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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