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때 앵무새가 깨어났다. 직원의 배가 4분의 3까지 돌아갔던 순간, 앵무새는 기분이 나쁘다는 걸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렇게 비명을 질렀으니까.
"꾸웩!"
거대한 배가 움찔했다.
"꾸이-욕!"
그배가 다시 돌아서서 멈추었다. 빅 엔젤은 그저 앞만 똑바로바라보았다. 턱 근육이 격렬하게 떨려서 뺨이 후들거렸다.
"으웨에엑!"
직원의 커다랗고 붉은 얼굴이 스윽 내려와 창문 밖에 보였다. 얼빠진 얼굴이었다.
어머니 아메리카는 세상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좀 이상하죠? 이게 뭘 것 같으세요?"
그 순간 그녀의 가슴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이어 투덜거리는 소리와 꽥꽥대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앵무새가 가슴골에서 꿈틀대며 튀어나와 머리를 빙글빙글 돌려댔다.
"참 재미있네요."
어머니 아메리카가 말했다.
화가 난 데다 술이 덜 깬 앵무새는 펄쩍 솟아올라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열린 창문 사이로 탈출해서 날아가버렸다.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공무원들과 멕시코인들과 뒷좌석에 있던 미국 시민들 모두가 국경 너머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그저 바라보았다. - P456

빅 엔젤은 뒤통수에서부터 팔을 타고 내려가는 고통을 느끼며 씩 웃었다. 아직은 태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재미있구나, 아우야. 나는 예전에 죽을 정도로 배고팠다고, 알지? 언제나 뭔가를 먹고 싶었어. 그런데 우리가 여기 이 나라에 오니까, 먹게 되더라. 항상 말이야. 나는 살이 쪘어! 그래서 페를라가 나더러 여보flaco"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야. 재미있지."
리틀엔젤은 테라스에 드리워진 미니의 그림자를 보았다.
"근데 그거 알아? 지금 나는 또 배가 고파 죽겠어. 난 먹는 게싫어. 먹어봤자 암이나 키울 뿐이야. 이 약들을 먹으면 아파. 위장이 항상 쓰려. 하지만 음식 꿈을 꿔. 다시 열 살이 된 것처럼. 정말이야. 난 사랑을 나누는 꿈 같은 것도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카르니타랑 토르티야 꿈을 꾼다고."
미니의 그림자가 멀어져갔다.
빅 엔젤은 솔직하게 말했다.
"음...... 그래. 섹스 꿈도 항상 꾸지. 미겔 엔젤의 위대한 생각이라고 돼지고기를 넣은 토르티야. 그리고 엉덩이. 네가 내 이야기로 책을 쓴다면 알아둬라."
"그래야겠다."
"그래야지. 맞아."
"머저리 같은 엔젤." - P458

"날 용서해라."
빅 엔젤이 말했다.
"형도 날 용서해."
리틀 엔젤이 대답했다.
이제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준 상자 안에는 뭐가 들었어?"
리틀 엔젤이 물었다. 손으로 침실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너한테 주려고 했던 거다. 그 크리스마스 날에."
빅 엔젤이 대답했다. 미니는 그의 휠체어를 굴려 멀어져갔다.
"가서 봐."
리틀 엔젤은 그 상자를 뜯지 않을 참이었다. 죽든지 말든지, 미겔 엔젤 따위. 죄다 될 대로 되라지. 하지만 그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 초판 사인본이 들어있었다. - P461

사람들은 빅 엔젤에게 파도처럼 다가갔다. 마치 달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빽빽하게. 그것은 소용돌이이자 몸으로 만든 보호막이었다. 빅 엔젤은 사람들의 홍수가운데 휘말려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머리를 높이 들고 노래를 불렀다.

일어나요, 엔젤, 일어나요
무엇이 떴는지 봐요
벌써 작은 새들이 노래하고 있어요
달은 이미 저물었답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듣기에 노랫소리가 별로 크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리틀 엔젤이 한 번도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가 확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소리치고, 오페라를 부르는 것처럼, 마리아치 악단의 연주처럼 음을 높였다. 그러다 노래 중간쯤에는 흐느끼는 바람에 음을 놓쳐버렸다.
리틀 엔젤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서서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노래를 끝까지 들어본 적이 한 번도없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노래를 아는 것 같았다.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내가 당신에게 인사하러 온 아침이죠
우리 모두 기뻐하며 왔답니다
즐겁게 당신을 축하하러요

그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자, 모두는 큰 소리로 오랫동안 박수쳤고, 자리를 뜰 때까지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리틀 엔젤은 형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이 박수 치고 휘파람을 부는 가운데, 빅 엔젤은 기진맥진한 권투 선수처럼 두 손을 들고 머리 위에서 손을 맞잡아 흔들면서 입 모양으로 ‘그라시아스‘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반짝이는 눈물이 모든 이들을 바늘처럼 찔러댔다.
리틀 엔젤은 눈 위에 손을 얹었다. - P465

빅 엔젤은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기진맥진한 채로 잠들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에게 계시를 내려주셨으니, 꿈에서 송별 파티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모든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페를라가 겁에 질린 채로 소리치는 가운데 깨어났다. 그녀는 빅 엔젤의 얼굴과 베개에 묻은 피를 발견했고, 사람들은 허겁지겁 집에서 달려 나와 싫다는 빅 엔젤을 침대에서 끌어내어 응급실로 달렸다. 그러는 내내 그는 죽기를 거부했다. 바로 이 파티 때문이었다. 이 케이크, 이 노래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껏 잡혀 있던 시간의 기포에서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웃으며 이야기하고 아직도 케이크를 먹거나 서로에게 던져대고 있었다.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너는 한 번도 억지로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겠지. 스스로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다면, 언젠가 하느님은 너를 바닥에 메다꽂고는 네가 지은 죄를 낱낱이 대조해보실 거다. 그때가 오기를기다려라, 막내야.
내가 정말 미안하구나.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랄로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애는 아부지 옆에 있는 의자에서 점점 몸이 미끄러져갔다. 그리고 발을 축 늘어뜨린 채로 코까지 골아댔다. 그는 손등으로 아들의 얼굴을 쓸었다.
"폐인 같은 놈." - P472

두 조각째 케이크를 먹으러 온 리틀 엔젤은 형 옆에 앉았다. 그들은 자면서 실실 웃고 있는 랄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나 널 사랑한거 알지."
빅 엔젤이 말했다.
"나도 그래."
"시애틀로 가지 마라."
"가야 해 일해야지. 나도 내 삶이 있는데."
"그럼 내 자리는 누가 이어받냐?"
"난 아니야."
"너밖에 없어. 랄로는 가장이 될 자질이 없어, 인디오는 떠나버렸고, 불쌍한 세사르는…… 할 수 없어. 난 널 골랐다."
리틀 엔젤은 형을 슬쩍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여자가 가장을 할 차례가 온 것도 같아."
그는 이렇게 말하며 라 미니를 가리켰다.
"지금은 재가 여기 대장이야."
빅 엔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P476

 그는 자신의 인생 마지막 장면을 보았다. 조그마하지도, 스러지지도 않은 영웅적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웅장했다. 그는 앞으로 가족의 기억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는 전설이 될 것이었다. 그는 일어섰다.
그는 리틀 엔젤에게 손을 뻗었다.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만히 앉혀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너 지금 뭐하자는 거냐?"
그는 총잡이에게 물었다.
총구를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건만, 총잡이는 총을 쏘는 대신 그를 흘깃 바라보고 말했다.
"앉아, 노인네."
"니미 씨발 놈아."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더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건가? 이망할 새끼들은 입이 참 거칠었다. 총잡이는 계속 어찌할 줄을 모르고만 있었다. 오늘은 살면서 최악으로 웃음거리가 된 날, 다 망해버린 날이었다. 이 가족들, 다들 미쳤군. 게다가 다들 말도 너무 많아.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겠다는 총잡이의 계획은 아주 분명했는데, 자신의 총으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랄로를 죽여버리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이 늙은이가 입을 열어서 총잡이는 그만 당황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리려고 온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총알을 더 챙겨왔겠지. 고달픈 인생이여. 할 일이 너무 많잖아. - P482

"하지만 네가 날 못 죽이면, 내가 반드시 네 어미 목을 따버릴거다. 네 아비 목도 지체하지 않고 죽여버릴 거야. 그 머리통으로 볼링을 쳐줄 테다."
페를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들! 아버지를 구해!"
사람들이 총잡이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는 총구를 사람들 쪽으로 돌렸다. 제길. 그는 다시 노인네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티에 늦어서 미안해요."
빅 엔젤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곳에서 인디오가 나타나서 아버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노인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서와라, 얘야!"
사람들은 한 달 내내 연습해온 가족 연극을 보듯 그 장면에 빠져들었다.
인디오는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장면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의 역할을 연기했다.
"왔어요, 아부지.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빅 엔젤이 작게 미소 짓자, 인디오의 마음은 자부심으로 가득찼다.
"아, 이거"
빅 엔젤은 날씨 얘기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어떤 멍청이가 우릴 전부 죽이겠다잖냐."
엘 인디오는 기분 나쁘다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들은 이 상황을 끝까지 빅 엔젤의 방식으로 이끌어갈 작정이었다.
엘 인디오가 말했다.
"그럼 날 먼저 죽여, 개새끼야. 그게 내가 해줄 말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미쳤어. 총잡이는 총구를 내리고 뒤를 돌아도망쳤다.
미니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그는 잠시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잡아낸 인디오가 주먹을 날렸다. 오른 주먹이 남자의 옆얼굴을치고 턱과 얼굴뼈를 부수었다. 그놈은 풀썩 쓰러졌고, 콘크리트바닥에 어찌나 심하게 부딪혔는지 들고 있던 권총이 날아가버렸다. 미니는 권총을 밟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우리 애들이야." - P486

"아우야, 자기 전에 잠깐 나 좀 보자."
ㅍ삼촌이 침대 옆으로 기어가 아부지 옆에 앉는 걸 보고 인디오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아까도 이러고 있었어."
리틀엔젤이 그에게 말했다.
"멋지네."
인디오는 대꾸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좀 어안이 벙벙했다.
"얘야."
빅 엔젤이 부르자 미니가 침대로 올라왔다.
인디오는 주먹을 꽉 쥐고 선 채로 이 장면의 전개를 그저 바라보았다. 이건 그가 기억하던 가족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브라울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그의 동생이 잔인하게 웃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 응시했다.
페를라는 그의 옆에 서서 손으로 등을 쓸었다.
"너도 가봐."
"아냐, 괜찮아."
"얘야, 가라니까."
"나는 괜찮다고."
"랄로는 어디 있지?"
빅 엔젤이 말했다.
"여기 왔어요, 아부지."
랄로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침대 발치에서 올라가 아버지의 발밑에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웠다.
페를라는 모두와 함께 침대에 올라가지 않을 참이었다. 그녀는 인디오에게서 물러서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인디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페를라는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빅 엔젤 옆에 가까이 선 다음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빅 엔젤은 그 손을 잡고서 아내의 손마디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빅 엔젤의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아들?"
페를라의 부름에 인디오는 몸을 돌렸지만 문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마침내 빅 엔젤이 말했다.
"아들아, 왜 나랑 여기 있지 않는 거냐?"
인디오는 마침내 돌아섰다.
모두 몸을 비켜 가족의 침대에 그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 P491

"8시야."
"준비할게."
"죽지마."
"아직은 안 죽어. 하지만 혹시 내가 죽으면 벌새가 보일 거야.
그럼 인사를 해. 그게 나일 테니까. 잊지 마."
"절대로 안 잊을게."
리틀 엔젤은 약속했다.
그들은 작별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빅 엔젤은 아내를 꼭 껴안았다.
"뭐, 좋아. 난 내일 죽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변에 갈
"거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들 때문에 내가 미쳐버리겠어.
빅 엔젤은 내일 아침에 여행할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리틀 엔젤은 그들을 데리고 이 동네를 빠져나와 농구 코트와 맥도날드를 지나 805번 국도에 진입할 것이다. 라디오를 틀고 큰형에게 웃어주겠지. 티후아나는 저 멀리서 점점 작아지면서 보이지 않게 되리라. 그들은 북쪽과 서쪽으로 가서, 해변에 도착한다음 탁 트인 구릿빛 바다 위를 영원히 떠도는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리라. - 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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