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대동소이한 읊조림에 리듬이 실리고 한때의 평온함이 몸속에 번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무용의 등을쓸어내린다. 무용은 촉촉한 코를 그녀의 턱에 비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꼭 개라서가 아니다. 사람한테라고 다를 바 없지. 늙은이는 온전한 정신으로 여생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늙은이는 질병에 잘 옮고 또 잘 옮기고 다닌다는•••••• 누구도 그의 무게를 대신 감당해주지 않는다는. 다 사람한테 하듯이 그러는 거야. 너를 잘 돌봐주진 못했어도 네가 그런 지경에 놓이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죽어서도 마음이 불편하겠지. 그러니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에." - P138
이때 조각의 마음속 시선은 몇 갈래로 분산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그 모든것을 떠올릴 만큼 머릿속의 신호등이 아직 쓸 만한 것 같았다. 그중 하나는 지금껏 골몰해온 대로 늑골을 다 열어 심장을 꺼내보기 전에는 그 심리를 알지 못할 투우-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묘한 방해 공작에 대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편찮은 정도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장 박사에 대한 안쓰러움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그 느낌은 리어카노인을 거들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렸으며,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선택 특진제도 아닌 다음에야 의사를 골라 진료실에 들어갈수 없는 만큼 남은 두 명의 내과의 가운데 강 박사를 마주칠절반의 확률에 대해서였는데, 이때 그녀는 자포자기인지 일종의 기대감인지 모를 것이 폐에 차올라 세찬 맥놀이와 함께 간섭음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절반의 확률 안에 포섭되었다. - P203
조각은 주인 여자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귤을 받아 껍질을 벗긴다. 말랑말랑한 감촉으로 봐서 그리시지 않을 줄이야 알았지만 입에 넣으니 주인 여자의 말이상이다. 혀에 감긴 귤 알맹이가 부서지자 입안이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감각으로 채워지고, 세로토닌이 한껏 상승한상태에서 조모와 손녀를 바라보니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스럽다.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 P211
주인 여자의 한숨 앞에 조각은 자기가 강 박사의 어머니를 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일을 사는 것 말곤 달리 없을 것 같아 귤 한 망태기를 달라고 한다. 여남은 개들어 있는 한 망에 8천 원이면 싸지는 않지 싶으면서도 지갑을 여는 그녀 옆으로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진다. 문득 지폐를 세던 그녀의 손가락이 굼떠진다. 한기가 들면서 불안감섞인 흥분이 땀으로 맺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며, 그녀는 동요하는 눈동자에 힘을 주어 옆으로 밀어본다. 그녀의팔꿈치와 거의 붙을 듯이 서서 바구니에 담긴 단감을 한 개들어 만지작거리는 투우의 옆모습이 거기 있다. "홍시 있으면 좀 보여주실래요?" 투우는 조각을 짐짓 모른 척하며 주인 여자에게 말한다. - P213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채소칸 벽에 붙어 있던 걸 떼어내느라 살짝 악력을 높였더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오자 무용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짖기 시작한다. - P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