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공장식 축산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고 동물복지는 궁극의 해결책이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좁은 면적에서 키워진 불쌍한 닭들이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는 생각에는 과학적 오류가 있다.
우선 좁은 사육 면적과 면역력은 인과 관계가 없다. 케이지나 바닥에서 키워지는 닭들은 A4 용지 한 장만큼의 생활 공간이 넓은지, 좁은지 모르겠지만, 건강의 측면에서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동물복지 케이지나 바닥 사육 시스템을 도입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기생충, 골절 등 더 많은 질병과 부작용으로 동물복지 시스템에 대한 회의론과 무용론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또한 동물복지 사육 환경과 좋은 사료라도 전염성 질병의 위험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면역, 스트레스, 비타민이라는 단어에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세 가지 모두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렸다.‘는 말은 계량화하기 어렵다. 스트레스에 대한 지표가 아직까지 표준화돼 있지 않고 면역력에대한 정량적인 근거도 없다. 간혹 몇몇 질병이나 감염병에 대해서는
‘항체가 이외에 높다,낮다를 증명해줄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면역은 일반 면역과 특수 면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 면역은 측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좁은 곳에 살아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서 면력이 올라갔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특정 전염병에 대한 면역은 오직 백신이나 사전 감염으로만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면역은 백신이 없다면 아무리 건강한 어떤 닭이라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 P127

현재 한국에는 긴급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항원 뱅크가 만들어져있다. 항원 뱅크란, 백신을 만들기 전에 바이러스만 증식해 보관한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적당량의 보조제를 넣어 병에 포장하면 몇시간 안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항원 뱅크용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피해가 큰지를 선택해 국내에 큰 가금단지를 2회 접종할 만한 규모의 백신을 비축한다. 닭에게 주사하는 백신은 ‘사독오일백신‘이라는 형태로 사람에게 주사하는 투명한 형태가 아니라 우윳빛의 진득한 액체다.
여기서 ‘사독‘의 의미는 균이 완전히 죽어 변화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한편 ‘오일백신‘은 반드시 주사로 근육에 접종해야 하는데, 닭을 한 마리 한 마리 잡아서 백신을 주사하는 일은일반 가금 농가에서 항상 해오던 일이다. 백신 바이러스 균주에 대해서는 2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며 만약 2년 이내에 사용하지 못하고 유효 기간이 지나면 폐기한다.
생산을 마친 백신은 마리당 50원 수준이므로 긴급방역비용이라고 하기엔 전혀 부담이 없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FAO에서 제조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한국은 원조를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7년부터 저병원성 인플루엔자 생산시설이 있으며 백신에 대한 제조 기술도 충분하다. 이와 같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인플루엔자에 대한 플랜B로서 백신 정책이 도입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6년 대규모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이후 가금수의사회 등에서 백신 정책을 주장해 항원 뱅크를 수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준비된 백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이 백신 정책이다. - P128

매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야생 조류에서 항상 검출되는봉강천, 풍세천 인근 천안 지역은 여름부터 모든 농장에 백신을 보급할수도 있다. 매년 야생 철새가 찾아오는 곳은 서해안벨트로 불리는 지역이다. 어차피 위험해질 거라면 백신을 이용해 처음부터 발생 속도를 늦추거나 살처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을 ‘예방 백신‘이라 부른다.
한편, 한두 농장에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발생 농장을중심으로 에워싸듯이 링 백신 형태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런 방식을 ‘긴급 백신‘이라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백신 정책이긴급 백신 개념으로 수립돼 있다. 살처분 정책을 지속하다 방어하기 어렵거나 바이러스의 전파가 너무 빠르다고 판단되면 긴급 백신을 하도록 결정한다.
현재 규정상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10km 밖에서 3km 안쪽에 위치한 농장에 긴급 백신을 접종하고 3km 안쪽 지역은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한다. 하지만 이런 긴급 백신 방식은 긴급할 때 빠른 속도로 수행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즘처럼 교통과 도로가 발달한 체계에서는 3km, 10km 단위로 바이러스가 전파되기보다는 수십 km까지도 사람이나 차량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 발생 농장을 둘러싼이런 링 백신 형태의 방어막은 바이러스의 증폭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긴급하고 정확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부담이 크고 각 개체마다 면역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2~3주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면역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백신은 긴급 백신보다는 예방 백신이 효과적이다.
백신의 장점 중 하나는 희귀종이나 멸종위기 동물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 가치가 있는 귀한 가금류(예: 오골계, 관상용 희귀종)는 백신 우선순위에 있다. 이런 개체들은 당연히 백신 후 개체들의보호가 목적이고 비록 백신 후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살아 있고 바이러스가 이미 소멸됐다면 살처분하지 않을 수 있다. 바이러스의 박멸이 목적이지 생명을 희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 P130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변이가 잘 일어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스스로 진화하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인플루엔자가 한 몸에 섞여 바이러스끼리 유전자 정보 교환을 하면서 변이가 일어나기 쉬워진다. 이런 일이 생기기 쉬운 조건은 다른 종의 동물들이 혼재된 환경이다. 즉, 오리와 닭이 함께 사육되거나 돼지와 닭이 함께 키워지는 축산 환경이나 자연에서 일어날 확률이 크다.
일단 한국의 산업화된 농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자연적인 변이를 만들기 어렵다. 동남아나 중국에서는 연못이나 강의 주변에서 자연 방목을 하는 조류들이나 물새들이 날아오는 철새와 바이러스를 공유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바이러스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동남아 전통시장에서는 닭과 오리가 한바구니에 담겨 거래되거나 사육된다. 이런 경우도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유행하며 변이될 확률이 높다. 즉, 한국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변이된 바이러스가 유입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 P141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바이러스를 더 추적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게 더 현명하다. 백신을 하든, 살처분을 하든 공중 보건상 바이러스가 증가하는 현상을 막는 것이 우선이며 위험한 기간이 끝난 후에도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바이러스의 변이와 향후 전망을 예상해야 한다. 돼지에서도 바이러스를 예찰해야 한다. 이런 원헬스 개념을 가진 수의사들을 통해 예찰해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단지 현재의 코로나와 겨울철 인플루엔자 발병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과학적 연구가 효과를 내려면 반드시 정부 정책과 맞물려야 한다. 민·관·학이 함께 방향을 맞춰야 한다. 과도한 방역보다는 과학적인 방역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살처분 일변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한층 성숙한 방역을 기획해야 한다. 전 세계가 18세기 살처분 방법에만 의존하는 방역 프레임에서 이제는 벗어나길 바란다. 21세기의 도구를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사용하고 정책을 유연하고 다양하게 구사하길바란다. 새로운 백신 개발, 시범 사업, 예방 백신이 첫걸음이다.
방역을 한차원 높이기 위해서는 백신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조만간 세계의 축산 방역도 선도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우리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 P146

안 박사는 우리에게 닭 사체의 뼈를 꺾어 보이면서 땅속의 사체가 아직 온전함을 설명해줬다. 땅속에 들어가면 토양의 미생물로 분해되고 나중에 흙과 같은 형태로 변할 줄 알았는데, 미라 형태로 남아 있는 닭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10년이 지나도 저런상태라면 살처분이라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묻으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우리눈에 안 보일 뿐이었다.
한꺼번에 저렇게 많은 동물을 묻었는데, 토양이 스스로 자정 작용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저 인간들의 무지와 욕심일 뿐이었다. 묻으면 안 보일 뿐 우리는 어쩌면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심란합니다."
"열처리해야 하겠는데요? 간단하게 끝내려고 했더니.."
"미생물 처리로는 안 되겠어요."
"네, 열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열처리하고 미생물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매몰지 재처리 작업은 이렇게 다 파낸 다음에 오염된 흙에 톱밥처럼 생긴 미생물 발효물질과 함께 섞어 다시 넣어주면 토양이 쉽게 복원된다고 했다. 사체들은 모아 퇴비화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곳 매몰지의 토양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결국 열처리를 통해 한번 태운 후 미생물 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흙에 생각보다 물기가 많았고 그 물기는 거의 닭의 지방이나 피였기 때문이었다. - P154

살처분의 생명이 ‘신속함‘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해보였다. 현재는 PVC로 된 저장 탱크에 살처분한 사체들을 넣고 나중에 거름으로 재처리하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마 10년 전에는 땅에 묻으면 다 썩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처분 매립을 했을 것이다. 이후 이런 토양 오염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침출수 등이 문제가되자, 토양이 아닌 저장조에 일단 묻는 형식으로 변했을 것이다. 물론 저장조에 통조림 또는 젓갈처럼 썩어가는 사체들도 이런 재처리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애초에이렇게 대량으로 살처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57

"우리 국민들은 동물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생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법에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법체계에는 소위 ‘법적 도그마 (DOGMA)의 장벽‘이 높게처져 있는데요. 즉, 모든 권리의 주체는 인간이 되고 인간 이외의 다른 것들은 권리의 객체가 되죠. 사실 ‘동물의 존엄성‘이나 ‘동물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법학에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법은 ‘가치 세계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변화가 있게 되면 동물생명의 존엄성이나 동물의 권리 등은 우리 법학 내로 수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또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고 진보된 사회로 갈수록 동물의 법적 지위를 높이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보다 크게 나타날 겁니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도 동물은 ‘살아있다‘라는 점을, ‘생명의 주체‘라는 점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때가 곧 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농장동물이나 야생동물 등에 대해서도 보다 특별한 법적 고려와 대우를 하게 될 것입니다." - P160

2020년 코로나를 겪으며 극도로 예민해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피로감은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질병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고, 지금도 발병농가 3km 이내의 농장에서는 멀쩡한 닭과 오리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덮어놓고 죽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아주 오랜 이기적인 관습이다. 이제는 이 관습에 의문과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그만큼 과학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지구는 우리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별이 아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과학발전은 인간만을 위해쓰려고 준 재능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런 바이러스의 위협에 동물들을 구하고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라는 인간의 ‘사명‘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까지 동물은 죽이고 인간은 살려야만 하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를 살고 있다. 백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축이라불리는 동물에게는 쓰지 않는 인간, 코로나에는 없는 백신을 개발해서라도 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는 인간의 모습을 보라. 딜레마가 느껴지지 않는가?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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