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처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농장 문을 열고 취재에 응해준 곳도 대부분 동물복지 농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농장은 살처분과 관련해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에서 동물복지인증을 장려하고 있으면서 항상 똑같은 잣대로 살처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심했다.
참사랑 농장의 임희춘 씨는 처음 동물복지 농장 설명회에서 만난 수의사에게 실망을 했다고 한다. 기껏 동물복지하라고 해놓고 막상 전염병이 돌면 모두 똑같이 살처분하라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희 동물복지 농가들은 수의사 선생님들에게 1년에 한 번씩 교육을 받습니다. 지난번 교육 때는 그분께서 힘들지만 열심히 하라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그분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살처분하라고 하더군요.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교육장에서는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살처분하라는 것은 저희보고 죽으라는 거잖아요. 이럴 거면 교육이 왜 필요한 거죠?"

한쪽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장려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묻지마식의 ‘살처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처분을 둘러싼 동물복지 농장의 최대 쟁점이다. - P111

"어떻게 보면 정말 가장 싼 돈으로 가장 많은 단백질을 공급해주는 게 달걀이에요. 그런데 적어도 내 아이가 먹고 내 가족이먹는 달걀이 어떻게 유통되고 어떤 곳에서 어떻게 달걀이 나왔는지 정도는 국민 여러분들이 알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달걀을 주기 위해 아이(닭)들이 얼마만큼 고통을 당하고 얼마만큼 죽임을 당하고 얼마만큼 죽어 나가고 있는지 국민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달걀을 쉽게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 달걀 한 알 때문에 수많은 아이(닭)들이 떼죽음 당하고 있어요. 멀쩡한 아이들까지…. 어렸을 때 강아지, 닭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는데 이제는 생명이, 생명이 아니에요. 너무 많은 죽음을 보다 보니 뭐죽음을 봐도 ‘죽나 보다‘, ‘당연히 죽였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AI나 살처분 이야기가 나오면 국민 여러분들은 ‘그냥 다 병에걸렸나 보다‘. ‘그래서 죽였나 보다.‘라고 생각하죠. 그게 아니거든요. 병에 안 걸려서 죽는 애들이 더 많아요. 그 ‘예방‘이라는 말 때문에..."

결국 묻지마식 살처분에 대한 문제를 동물복지 농장에서 제기한것이다. 이런 저항과 반대는 정책 결정 기관에서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개월 동안 비상근무를했다는 익산시 어느 공무원의 고층도 이해가 가고 생명윤리를 외치는 동물복지 농장의 목소리도 이해가 간다. 어쨌든 가축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당해야 했던 동물들을 보호할 방안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 P112

주위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굉장히 바쁘시겠네요?"라고 묻는다. 아니,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관한 한 모든 것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종 가축 전염병은 정부가 도맡아 하고 민간인인 우리는 그 이외의 조류 질병을 담당한다. 심지어 우리는 국내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세월호 사건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의 명령이 발동되고 수의사나 가축 관련 종사자들은 모두 ‘잠재적)전파자‘로 취급된다.
행정에서 보는 방역과 현장에서 보는 방역은 다르다. 조류인플루엔자를 코로나 사태에 비유하자면 의사들은 집에서 쉬고 환자들 접한 경험이 없는 공무원들이 모두 동원되어 진료하고 환자를 분류하고 방역활동을 하는 셈이다. 과연 행정력만으로 방역이 될까? 정부는 행정으로 질병을 처리하고 우리는 질병과 생명을 다루는 입장이므로 서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의 경험과 정부의 행정력이 상호 보완된다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116

 고병원성이라는 이름에서 시작된 오해
국제수역사무국OE 이 정의한 조류인플루엔자의 고병원성 highly path-ogenic 이란, 단지 닭에서 바이러스가 얼마나 빠르게 증식하고 치명적인지를 기준으로 만든 이름이다. 즉, 오리나 기러기 같은 다른 조류는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도 아무런 증상이 없고 다만 바이러스를 배출하고 보균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야생 철새들이 국가와지역을 넘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2007년 야생 조류가 조류인플루엔자의 전파 원인이라고 알려지면서 모든 관심사와 책임이 애꿎은 야생 조류에게 돌아갔다. 청둥오리, 기러기가 모든 공무원과 학자의 공공의 적이 됐다.
한때 조류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사람의 계절 독감과 혼동하곤 했다. 2003년 이후 매 차례 발생하자, 어느 순간 이 질병이 ‘공포‘라고 보도됐고 이 시점 이후 마치 사람의 질병인 것처럼 다뤄졌다. 고병원성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마치 걸리면 많이 아플 수 있다는 느낌을 줬다. 적어도 몇몇 언론은 고병원성이라는 이름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하지만 사람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수용체가 호흡기 깊숙이 있어서 바이러스를 직접 흡입한다 해도 상부 호흡기에서 대부분 걸러진다. 단순히 물가에 가고 새똥을 밟는다고 하더라도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될 확률은 0%에 가깝다. 아직까지도 겨울이면 도심 근처의 호수나 철새가 찾아오는 물가에는 마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직접 감염을 일으킬것처럼 표현돼 있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 P121

조류인플루엔자가 모든 인플루엔자를 대표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조류가 거의 대부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은 어떤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닭에게서 증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그래서 조류가 위험한거야.‘라고 해석하지만 조류가 없거나 달걀에 바이러스를 접종해 배양할 수 없다면 백신을 만들 수 없다. 만약 지금 팬데믹이 코로나가 아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더라면, 아마도 백신이 실험실에서 빠르게 테스트되고 달걀에서 백신 바이러스 배양을 시작해 빠르게 백신을 보급했을 수도 있다. 실제 우리가 매년 겨울에 주사로 맞는 3가, 4가 계절 독감은 거의 대부분 달걀에서 생산한다. 만약 조류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바이러스 배양 시스템을 찾아내야 하고 빠르고 저렴한 백신 생산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조류들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가져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응할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알을 내주는 고마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 P122

3km 방역대는 공기를 전파할 수 있는 바이러스 특성들 때문에 주변을 빠르게 살처분해야 하는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생겨난 방역 관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차량으로 하루 안에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있는 시대인데, 오히려 바이러스 역학적으로 주변 농장이 꼭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공기와 쥐나 야생동물이 병을 매개할수 있다며 단순히 동그라미로 그려놓은 18세기 방역대 논리를 21세기에도 계속 따라야 할까? 차량의 동선과 사람의 이동을 좀 더 세밀하게 추적해 좀 더 정교한 방역을 할 수는 없을까? 운송 수단과 사회 변화는 21세기를 달리고 있지만, 질병 통제 수단은 아직도 18세기 살처분 방식에만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바이러스 없이 유전자만으로도 백신을 만들고 재조합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시대인데 말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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