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나흐Lucas Cranach,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부세 FrançoisBoucher, 와토Antoine Watteau, 호이옌Jan van Goyen, 뒤러Albrecht Diürer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도 있다. 그림이 하도 많다 보니 다락 전체가 색으로 소용돌이친다. 거기에 상아의 광채와 은이 내뿜는 빛이 더해져 색은 더욱 강조되고 반짝이는 금빛이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별 볼 일 없는 동네의특별할 것 없는 집 다락. 예술 전문 기자들은 이곳에 숨겨둔 작품의 가치를 모두 합쳐 돈으로 환산하면 약 20억 달러(2조 7,000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 두 사람은 환상 속 세계를 뛰어넘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보물 상자 안에 사는 삶이라니. - P31

야밤에 저지른 폭력적인 강도 짓을 브라이트비저와 비교하는 것은 모욕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예술품 절도는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않아야 하며 낮에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가드너 박물관 사건을 싫어하는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폭력을 행사한 이후도 문제였다. 도둑들은 위층으로 올라가 이 박물관에서 가장 훌륭한작품인 렘브란트 Rembrandt van Rijn의 1633년작 <갈릴리 호수의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을 마주 보고 섰다. 그러고는 캔폭풍The버스에 칼을 꽂아 넣었다.
브라이트비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칼날로 20미터에 이르는 작품의 가장자리를 찢어 물감 조각이 튀어나오고 캔버스의 실밥이 터졌다. 그림이 틀과 액자에서 흐물흐물 떨어져 나와 활기를 잃고 종이가 말려 물감이 갈라지고 깨졌다. 도둑들은 또 다른 렘브란트의 작품에도 똑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브라이트비저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범죄자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고의로 그림을 가르고 부수다니, 비도덕적이다. 물론 그도 액자가 있으면 그림을 홈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벽에서 작품을떼어낸 다음 뒤집어서 뒷면에 달린 클립이나 못을 조심스럽게 빼내 액자를 분리한 뒤 그림만 가지고 나온다. 이렇게 까지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을 때는 차라리 포기하고 훔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그림에 상처라도 날까, 또는휘거나 주름이 생기거나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막 태어난갓난아기를 대하는 양 애지중지한다. - P34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찰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브라이트비저는 마음이 동하는 작품만 훔치고 그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은 남겨둔다. 도둑질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가 가진 뒤틀린 관점에서 보기에 박물관은 예술의 감옥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북적이고 시끄러우며 관람 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리도 불편하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쉴 만한 장소도 없다. 셀카봉으로 무장한 관광객 무리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처럼 이 방 저방을우르르 몰려다닌다. - P35

앤 캐서린의 대답으로 그 순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되었다. 둘 다 고작 스물두 살이었다. 앤 캐서린을 만났을때 브라이트비저는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앤캐서린은 법을 위반하는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그렇다고 해서 브라이트비저의 행동에 거부감을 갖지는 않았다.
"앤 캐서린은 그런 면을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꼈을 거예요." 브라운이 천천히 생각하다 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수발총과 함께 새로운 모험의 기회가 눈앞에 있다. 앤 캐서린은 이날의 대답으로 반항아 애인을 사로잡을 수 있었고더 가까워졌으며 아마도 전보다 더욱 사랑받았을 것이다.
지인들은 그녀가 청춘의 환상 같은 것에 빠진 상태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마치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말이다.
"그렇게 해. 가져가자." - P56

브라이트비저는 앤 캐서린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낚아채 마침 거실로 들어오는 어머니를 비추며 렌즈를 가까이 당긴다. 턱을 치켜들고 척추를 곧게 편 채 우아하고 침착한 모습이다. "방금 내가 한 말 들었어요?" 새해 목표가 수백만 달러어치의 예술품을 훔치는 거라고 한 말을 어머니가 들었는지 대놓고 묻는다. 브라이트비저는 이미 대답을 안다.
스텐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들을 바라보다 몸을돌려 밝은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천을 씌운 소파를 지나 오디오 쪽으로 간다. 허리를 굽혀 볼륨을 높인다. "못 들은척하는 거예요?" 브라이트비저가 도발하듯 소리친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는다. 카메라에서 더 물러서며 아들쪽을 힐끗 본다. 미소를 짓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더니 잠시 목소리 톤을 높여 웃는다. 언짢지만 억지로크게 웃는 느낌이다.
여기서 촬영이 멈춘다. 브라이트비저는 어머니가 일부러 모르는 척함으로써 공범이 되는 상황을 모면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알면서도 모릅니다. 모래에 머리를 박고있는 거죠." 파리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스텐겔의 지인에 따르면 그녀는 지식 수준이 높고 교양도 있다. "아들이 하는 멍청한 짓을 전부 용서해주죠. 사랑하니까,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짓을 해도 눈감아주고 보호해주려 해요."
브라이트비저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들과 법, 둘 중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는 점을 잘 안다. 스텐겔이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집에서 브라이트비저를 내보낼 생각도 없고 그보다 더한 것도 넘어가준다. "어머니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신고라도 하게요?" - P110

첫째, 훔친 작품을 불법적인 경로로 판매한다. 부정한방법으로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오슬로 대학교는 43개국에서 거래된 불법 미술품이나 유물을조사해 정리했다. 통상적으로 도난 작품의 가격은 소매가의 3~10퍼센트 정도이고, 유명한 작품일수록 가격이 내려간다. 3퍼센트라고 했을 때, 100만 달러(약 13억 원) 가치의 작품을 팔면 3만 달러(약 4,000만 원)가 남는다. 훔칠 때감수하는 위험 부담을 생각하면 썩 좋은 가격이 아니다. 어떤 작품은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건너 여러 국가를 전전하고 전당포와 골동품 가게, 화랑 등을 거치면서 매매 증서와 진품 감정서를 갖기도 한다. 몇 년 후에는 주로 소규모경매장을 통해 다시 합법적인 시장에 등장한다.
둘째, 작품을 도난당한 박물관이나 개인 소유주 또는 보헐 회사에 돈을 요구한다. ‘예술품 납치art-napping‘라고 한다. 유명한 작품일 경우 장물로 팔기 어려워 이 방법이 가장 최선이지만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며 오작교 역할을 할브로커가 필요하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위험한일이다. 추가 범죄를 조장할 수 있기에 박물관 측에서 도난품에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보통 ‘정보제공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런 식의 거래는 최소 1688년부터 찾아볼 수 있다. 에드워드 로이드 Edward Lloyd는 <런던 가제트 The LondonGazette)에 훔쳐간 회중시계 다섯 개를 돌려주면 1기니를 보상하겠다는 광고를 실었다. 로이드는 나중에 세계적인 예술품 보험 회사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를 설립한다.
셋째, 훔친 작품을 지하시장에서 화폐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서류함만 한 작은 그림(도둑들이 제일 많이 훔치는 크기다)이라도 상당한 금액과 맞먹는다. 현금이 가득 든 여행가방보다 그림 한 점을 들고 다니는 편이 공항에서나 국경을 넘을 때 유용하다. 러시아 정보국 발표에 따르면 미술품을 담보로 받는 범죄 조직이 러시아에만 40개 이상 있다.
1999년 사우디 왕자의 요트에서 사라진 피카소 작품은 추적 결과 지하시장에서 열 번이나 무기와 마약 거래에 이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 세 가지 전략(장물로 팔기, 협박해서 돈 뜯어내기, 현금처럼 쓰기)을 위해서는 미술품이 어딘가로 이동해야만 하고, 바로 이때 경찰이 개입할 틈이 생긴다. 예술품 범죄에서는 다른 사건과 달리 범인 체포보다 작품 회수가 더 중요하다. "렘브란트와 쓰레기 도둑 중 누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다르티스의 설명이다. - P142

예술은 찰스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론에따르면 자연계의 혹독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비효율성과 낭비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예술은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 없는 부분에 시간과 노력, 자원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지구상의 어느 문화에나 예술이 존재하며, 그형태는 실로 다양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이론가들은 예술이 이토록 널리 퍼진 것이 인류가 자연선택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사실 예술은 짝을 유혹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다윈주의에 부합한다. 예술은 생존의 압박과는 거의 무관하며 여가 시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간이 더는 포식자를피해 도망 다니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구라고 알려진 대뇌를 이용해 상상력을 펼치고 탐구하며 깨어 있는 동안에도 꿈을 꿀 수있게 되었고 신의 생각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진화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 P149

브라이트비저가 훔치는 담뱃갑과 포도주잔, 그리고 여타 가정용 물건은 실용적인 형태에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들로 대부분 1800년대 초기 유럽 산업혁명 직전에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는 모든 물건을 수작업으로 만들었고 거기에는 정교한 솜씨와 막대한 노동력이 들었다. 브라이트비저는 산업혁명 이후 엔진과 전기의 발명, 그리고 대량 생산시스템 덕분에 사람들의 삶이 수월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점차 보기 흉해졌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장인이 제자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서서히 독창적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요즘은 공장에서 값싸고 하나같이 똑같은 일회용 제품을 찍어낸다. 브라이트비저는 기계가 세상을 점령하기 직전의 시기에 인류 문명이 이미 아름다움과 기술 면에서 최대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물건과 작품을 훔친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가지만, 한적한 마을의 작은 다락에서만은 멈추기를 희망한다. - P152

다락에 이미 200여 점의 작품이 있는데도 도둑질이 더필요하다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독일 심리 분석학자 베르너 뮌스터버거 Werner Muensterberger가 저술한 《수집: 통제할수 없는 열정 Collecting: An Unruly Passion》은 ‘충동적 수집 강박‘에있어 교과서나 다름없는 책이다. 2011년에 사망한 뮌스터버거는 의학과 인류학, 예술사학 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받았는데, 그에 따르면 건강하지 않은 수집 강박(침실 책장에 널브러져 있는 스노우 볼 몇 개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은한 사람의 삶 전체를 지배하며 보통은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 우울증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찾아볼 수있다.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이들은 의미 있는 수집을 통해 ‘세상과 분리된 자기만의 세계로 마법처럼 탈출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수렵과 채집‘ 활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도 해 수집만이 삶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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