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진 않아?"
"아니야. 힘들지 않아."
그렇게 말하니 정말로 힘들지 않아졌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지난 며칠간의 부끄러움과 초조함은 날아가버리고, 둘 사이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떠올랐다. 이 덥고 환하고 붐비는 곳에서 그런 깨달음이 떠오르니 더더욱 짜릿한 느낌이었다. 그랬다. 그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챔피언 힐처럼 내밀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결코 서로를 정직하게 마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둘은 마주했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지만, 그래도 그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프랜시스는 릴리안과 의자 하나에 끼어 앉다시피 바투 앉아 있었다. 너무 바싹 붙어 있어서 릴리안의 향취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구분될 정도였다. 파우더 냄새, 립스틱 냄새, 머리카락 냄새까지. 릴리안은 사촌 한 명에게 뭐라고 소리쳐 말하고, 이모 한 분의 술잔을 치우고, 몸을 돌려 어머니의 목걸이 구슬을 매만져주었다. 프랜시스는 내내 릴리안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걸 알 수 있었고, 바라볼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온 피부의 모동으로 보고 있는건 아닐까? - P252

"저 남자가 널 기다리고 있네. 이름이 뭐야?" 릴리안의 경쾌한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너 여기서 한 명 제대로 꼬셨네. 그치? 저 남자 눈빛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게, 너한테 아주 푹 빠진 눈치야."
프랜시스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빛이 나는 거야."
릴리안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뜻이야?"
"저 남자가 내게 빠진 건, 내가 너에게 빠져 있기 때문일 뿐이야. 빛이 나는 건 너야, 릴리안."
릴리안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벌렸다. 릴리안의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게 보였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쇄골 위의 움푹 꺼진 부분이 팔딱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여섯 번, 일곱 번, 여덟번, 아홉 번 뛰었을 때, 릴리안은 프랜시스의 눈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나 집에 데려다줘."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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