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릴리안이 멈칫하고는 뭘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뜻밖에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와, 프랜시스에게서 한 발짝쯤 떨어진 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젖가슴 자체를 만진 건 아니었다. 어리둥절한채 가만히 얼어붙어 있는 프랜시스의 가슴 위의 허공에 손을 올리더니, 거기에서 삐져나온 무언가를 움켜쥐듯 손가락을 구부리는 시늉을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입으로 끼익, 쉭 하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손을 끌어당겼다.
그 짧은 연극이 끝날 때쯤에야 프랜시스는 그 의미를 이해했다. 릴리안이 손을 올렸던 자리는 프랜시스의 심장 바로 위였다. 릴리안은 심장에 박힌 말뚝을 빼내는 시늉을 한 것이다.
릴리안은 프랜시스와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 손길은 매끄럽고 세심했다. 심지어 손을 우아하게 펼쳐서, 빼어 들었던 말뚝을 저편에 팽개치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그러고는 자기 행동에 담긴 의미에 스스로 놀랐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릴리안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목 아래 피부가 북 가죽처럼 떨리는 게 프랜시스에게도 보였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은 팽창하는 듯,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정지한 듯 느껴졌다. 마치 물방울처럼, 눈물 한 방울처럼. 그러다가 커튼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릴리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돌려 방을 나갔고, 문을 닫았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무슨 의도로? 프랜시스는 베개에 등을 파묻은 채, 멀어져가는 릴리안의 발소리를 들으며 의문에 빠졌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니 상상 속의 말뚝에 관통당했던 자리가 약간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프랜시스는 블라우스 옷깃을 끌어 내리고 축 처진캐미솔 끈을 젖힌 뒤, 방 저편의 거울 앞으로 건너가서 가슴을 비춰보았다.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피부에 아무런 흠도, 자국도없었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침대로 돌아와 심장위에 손을 올리고 누우면서 그녀는 확신했다. 릴리안의 손길이 자신의 가슴에 일으켜놓은 어떤 열기가 일렁이는 것이, 피가 훅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고.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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