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어진말
"버들 애기씨,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
부산아지매가 물었다. 버들과 그의 어머니 윤 씨의 눈이 둥그레졌다.
구포에 사는데도 부산 아지매로 불리는 아주머니는 동백기름, 박가분, 빗, 거울, 바느질 도구, 성냥 같은 물건을 이고 마을마다 다니며 파는 방물장수다. 아지매는 윤씨가 어릴 때부터 그의 친정에 드나들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어진말을 찾아오는 부산아지매는 언제나 버들네 집에서 보따리를 펼쳐 장사하고 하룻밤 묵었다. - P7
윤 씨는 지난밤 생각해 보겠다며 답변을 미루었지만 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결정만 나면 신랑 측에서 결혼하는 데 드는 모든 경비를 보내 준다고 했으니 돈 걱정도 없다. 포와에 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과부의자식으로 삯바느질하며 살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시집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딸인 버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시집가 버리면 그만일 딸들은 부모와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포와에선 결혼한 여자들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포와는 낙원이었다. 버들은 다시없을 기회다 싶으면서도 제 욕심을 위해 식구를 떠나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