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길 원하는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은 다수 집단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을 폭넓게 수용하면 할수록 소수자들은 보다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 다수 집단의 세계로 순순히 통합될 경우 독립된 정체성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모든 사람이 획일적으로 미국인다워야 한다는 1950년대의 세계 비전을 거부하고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소중한 독특함을 물려받았다는 비전을 채택한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그의 훌륭한 저서 「스티그마Stigma에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주변인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진정성과 정치적 믿음을 갖도록 해준 어떤 요소에 대해서 긍지를 갖고 이를 천명할 때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사회 역사가 수전 버치 Susan Burch는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서 〈사회화의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어떤 집단을 동화시키려는 사회적인 시도는흔히 그 집단이 그들의 특이성에 대해 보다 큰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장애가 있는disabled〉이라는 표현 대신에 <다른 능력을 가진 differently abled>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례였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남달리 만족스러운 differentlygruntled>이나 <남달리 알맞은differently agreeable>이라고도 말했다. 오늘날에는 만약 자폐 아동의 경우라면 그가 <전형적인> 아이들과 다르다고, 왜소증이 있는 아이라면 <평균적인>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정상normal>이라는 단어는 절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의심의 여지없이 <비정상abnormal>이라는 표현도 허용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권리를 다룬 방대한 논문에서 교수들은 어떤 질환의 신체적 귀결을 의미하는 <기능장애impairment)와 사회적 맥락의 어떤 결과를 의미하는 <능력 장애 disability>의차이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는 기능장애지만 공공 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능력 장애다. - P63

일부 인권 운동가들은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마치 완벽한 게놈, 즉 유전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프로젝트 전체를 비난한다." 게놈 프로젝트가 이런 식으로 이해된 원인에는 프로젝트 입안자들이 웰빙의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금 제공자들에게 이 프로젝트가 만성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홍보한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 장애 인권 옹호론자들은 현실적으로 변화야말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학과 문화학을 가르치는 도나해러웨이 Donna Haraway는 게놈 프로젝트가 일종의 <시성(諡聖) 행위)이며, 유례없이 편협한 기준을 마련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체 지도 작성이 아직 불가능한 시기에 발표한 글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과 권력의 완전한 연결망이 확립되는 순간 비정상적인 개인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설명했다. 요컨대 권력자들이 그들의 특권을 공고히 할수록 정상성의 스펙트럼은 경직된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관점에 따르면 정상성의 개념은 <사회체의 육체적인 강건함과 도덕적인 청결함을 요구했다. 또한 결함이 있는 개인들 즉, 퇴화되고 질이 낮은 인간집단들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생물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절박함의 이름으로 국가의 인종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 결과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력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부추겼다. 푸코 본인도 주장했듯이 만약 <인생이 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이고 실수자체가 <인간의 사고와 역사를 구성하는 근간>이라면, 실수를 금지하는 행위는 진화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실수를 통해 태고의 진흙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P66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인지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더욱 힘들어 한다. 프랑스의 한 직설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위 계층이 중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훨씬 관대하다> 저소득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이 강조되는 반면에 고소득 가정에서는 <자립과 자기 계발이 강조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한 가정일수록 아이들을 위탁 시설에 맡기는경향이 두드러지고, 이런 경향은 소수 인종 가정보다 백인 가정에서 더욱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충격적으로 많은 수의 소수 인종 부모들이 위탁 양육에 자식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저기능성 자폐를 앓는아들이 있는 부유한 백인 여성과 이 여성의 아들과 상당 부분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자폐증 아들을 둔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을 잇달아 인터뷰했다.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던 여성은 아들의 상태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수 년간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다. 상대적으로 덜 유복한 여성은 여태껏 자신의 삶도 개선하지 못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절대로 아들을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자신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할 일이 없었다. 첫 번째 여성은 아들을 대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느꼈다. 그녀가 우울하게 말했다.「아들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숴요.」 두번째 여성은 아들과 비교적 행복하게 지냈다. 그녀가 말했다. 부서질 수있는 건 이미 오래전에 다 부서졌어요.」 고치려는 태도는 질병 모델이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정체성 모델이다. 어떤 가족이 어떤 길을 가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의 전제와 자원을 반영한다. - P77

다문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모자이크는 동화(同化)정책이라는 용광로에 꼭 필요한 해독제였다. 이제는 소규모 공국(公國)들이 집단적인 힘을찾아야 할 때다. <상호 교차성>은 다양한 유형의 억압이 서로를 먹여 살린다는, 이를테면 인종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차별 문제를 없앨수 없다는 이론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권 단체인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의 회장 벤저민 젤라스는 백인 마을에서자라는 것이 얼마나 화나는 경험이었는지 이야기하면서 그와 입양되어 온그의 동생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조롱을 당했는지 설명했다. 더불어 인종 문제로 그들을 경멸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마저 게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동생을 괴롭힐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설명했다. 그가 말했다. 어떤 집단의 편견을 그대로 용인할 경우 우리는 다른 모든 집단에 대해서도 편견을 그대로 용인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내 동생이든 또는 다른 누구든 상관없어요. 나는 어떤 사람을 배제하는 조건이 전제된 인간관계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싸움을 하고 있으며, 모두 똑같은 자유를 가졌습니다. - P90

달라이 라마의 추종자이면서 중국인에 의해 수십 년간 감옥살이를한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 자신을 가둔 포획자들에 대한 연민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고 대답했다. 부모들은 흔히 그들이 작고 연약한 어떤 존재를 포획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조사한 부모들은 자식의 팡기나 천재성, 특별한 외모에 오히려 포획되고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식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으려는 목표가 존재한다. 한번은 불교학자가 내게 많은 서양 사람들이 열반이란 번뇌가 없어졌을 때 도달할 수 있으며 영원한 행복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잘못 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그런 더없는 행복은 과거의 아픔에 의해서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따라서 불완전해질 것이다. 열반이란 미래의 환희를 고대할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시절을 담담하게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기쁨의 씨앗을 찾을 때 마침내 발견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되돌아보면 명백할 수 있다.
수평적 정체성을 가진 아동의 부모들 가운데는, 그들이 희망을 잃은채 극심한 비극적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지만 사실은 충분히 알지못해서 미처 원하지 않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중이었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수용이 절정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모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매 단계에 아이에게 쏟았던 사랑이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방식과 헤아릴 수 없는 소중한 방식으로 그들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는지 깨닫는다. 루미의 말에 의하면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들어온다." 이 책의 수수께끼는 소개된 대부분의 가족들이 피할 수 있었다면 절대로 마다하지 않았을 경험에 대해 결국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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