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뛰어난 학생이라는 사실 외에 황후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여학생으로 선발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샤선생과 마찬가지로 모든 서식에 있는 민족을 구분하는 난에 언제나 "만주족"이라고 기입했는데, 만주국은 만주족이 스스로 세운 독립국가라고 표방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만주국 황후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유리했던 것이다. 푸이는 일본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만주족 황제의통치 아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샤 선생은 자신을 충성스런 신하로 생각했고 외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여인이 자기 남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모든점에서 그 남자와 견해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에게는 샤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샤선생에게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추호도 샤 선생과 견해를 달리 할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그녀의 조국이 만주국이라고 배웠다. 이웃 중국에는 두 공화국이 있는데, 하나는 만주국에 적대적인 장제스가 이끄는 공화국이었고 또다른 나라는 왕징웨이가 우두머리인 만주국에 우호적인 나라라고 배웠다(왕징웨이는 당시 중국의 일부를 통치하던 일본의 꼭두각시인 통치자였다). 그녀는 만주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배우지 않았다. - P102

샤 선생은 오랫동안 황제 푸이는 일본인들이 행하는 이런 나쁜 짓을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황제가 사실상 일본인들의 포로이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이가 일본을 부르는 방식이 "우리의 친절한 이웃 나라"에서 "형님 나라‘로 바뀌고 다시 "부모 나라"로 바뀌자 샤 선생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면서 그를 "저 바보같은 겁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아직 샤 선생은 만주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잔혹행위의 책임을 황제가 어느 정도 져야하느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2건의 충격적인 사건이 샤 선생의 세계를 확 바꾸어놓고 말았다.
1941년 말의 어느 날, 샤 선생이 진료실에 있는데 그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한 남자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누더기를 걸쳤고 야윈 몸은 심하게 구부러져 거의 포개지다시피 되어 있었다. 그사람은 철도 노동자인데 심한 위장병에 시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1년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무거운 짐을 나른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그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자기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먹여살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샤 선생은 그에게 약해진 위가 그가 먹어야 했던 거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1939년 6월 1일 정부는 이제부터 쌀은 일본인들과 소수의 부역자들을 위해서 남겨두어야 한다고 공포했다. 대다수의 현지인들은 도토리죽과 수수로 연명해야 했다. 이것은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이었다. 샤 선생은 그에게 얼마간의 약을 무료로 주고, 외할머니에게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사온 쌀을 조금 주라고 했다. - P105

이틀 후 전교생이 샤오링허가 굽이쳐 흐르는 서문 밖 황량한 눈덮인 벌판으로 행진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 역시 촌장들의 인솔로그곳으로 왔다. 아이들은 그들이 "대일본제국에 순종하지 않는 나쁜 사람을 벌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문득 친구가 일본군 경비병들에게 끌려 바로 어머니 앞으로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쇠사슬에 묶여 있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고문을 당한 그 소녀는 얼굴이 잔뜩 부어서 어머니도 잘 알아볼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본군 병사들이 총을 들어 그녀를 겨냥했다. 그 소녀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입에서는 아무 말도나오지 않았다. 총성이 들렸고 소녀는 눈에 선혈을 뿌리며 앞으로푹 고꾸라졌다. 일본인 교장 "당나귀"가 학생들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는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머니는 이제 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 빨간 핏자국 위에 누워 있는 친구의 시체를 억지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흐느낌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젊은 일본인 여교사 다나카였다. 어느 틈에 다나카 선생에게로 다가간 "당나귀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 발길로 걷어찼다. 땅에 쓰러진 다나카 선생은 몸을 굴려 교장의 발길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교장은 계속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교장은그녀가 일본 민족을 배신했다고 으르렁댔다. 마침내 "당나귀"가 발길질을 그치고 학생들을 올려다보며 학교로 향해 행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구부러진 여선생의 몸과 친구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억지로 증오심을 삼켰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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