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 중 다수가 영국에 있는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이민자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니 이민자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데도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민자들과 의미 있는 교류를 하는 집단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인구의 거의 50%가 이민자인 런던에서는 브렉시트에 찬성한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매우 낮게 나왔다. 이민자들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이 끔찍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 P71
윌리엄스 ㅡ ‘강화된 경계심 측정‘ 설문지로 실제 차별 경험이 아니라 차별을 경험할 것 같다는 우려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가령 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오늘 어떤 일을 당할지 걱정하고 무시나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삶을 해칠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문지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내가 가지고있었던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당시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마다 혈압을 측정했을 때, 낮에는 젊고 건강한 흑인과 백인의 혈압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밤에 잠을 잘 때면 백인의 혈압 감소폭이 흑인보다 더 컸다. 밤에도 흑인의 혈압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늘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긴장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마치 잠이 들었을 때도 온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고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낮에 차별을경험한 흑인들의 경우 밤에도 혈압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왔다. 차별적인 환경은 삶의 모든 시간에 악영향을 줄 수있다. - P73
김승섭 ㅡ 제도적 차별은 법률로 막을 수 있고, 일대일 관계에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동은 혐오 발언 규제 등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윌리엄스 ㅡ 내가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차별적인 행동을 하기에 최적화된 사람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편견은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풀 때 더 쉽게 나타난다. ‘반고정관념 이미지 counter stereotype image‘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에 모든 여성이 연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저녁에 잠들기 전 강인한 여성은 어떤 모습일지 여러 번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대체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고정관념을 가진 대상을 계속해서 직접 만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내재적 편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동체에 존재하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미디어를 통해 고정관념을 바꾸려는 시도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TV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을 매우 매력적으로 그릴 때,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P76
김승섭 ㅡ 당신은 정신질환과 관련해 서로 다른 두 가지 낙인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가진사람들에 대해 갖는 ‘대중 낙인 public stigma‘ 이고 또 하나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갖게 되는 ‘자기 낙인self stigma‘ 이다. 코리건 ㅡ 사회는 유색인종, 여성, 동성애자, 휠체어 사용자와 같은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든다. 그 고정관념에서 편견이 발생하고 편견은 차별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들이 무능력하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편견은 그런 고정관념에 동의하는 것이고, 차별은 "당신을 고용하지 않겠다", "당신이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겠다"와 같은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대중 낙인이다. 대중 낙인은 차별로 이어진다. 반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위험하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낙인은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의 끔찍한 역설은 스스로가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잊을 만큼 심각하게 우울해지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당사자는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 P86
그러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말을 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낙인을 줄이려는 교육이나 캠페인에 돈을 쓰기보다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정신질환 당사자가 직접 "나도 똑같은 사람이고, 바로 이 자리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미국 동성애커뮤니티의 경험이 훌륭한 모범 사례다. 한때 미국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소아성애자라는 고정관념으로 이들이 선생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연구자들이 잘못된 낙인이라고 지적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이 직접 나서서 "입 다물고 나를 봐라. 나는 소아성애자가 아니다"라고 직접 말한 뒤에야 그러한 고정관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낙인 없이 성장했다. 그건 단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두 아이에게 동성애자 삼촌이 있었고, 가까운 동성애자 목사가 있었고, 부모와 친구로 지내는 동성애자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를 혐오하더라도,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성애자에게 "당신이 역겹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 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남은 힘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혐오 발언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정신질환 역시 당사자가 사회에 나오고 존재를 드러내야 낙인을 줄일 수 있다. - P89
세 번째 키워드는 정치입니다. 작년부터 진행된 이동권투쟁을 지켜보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처음에는 그 불편함을 인내하고 받아들이던 시민들이 투쟁에 나선 장애인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탄이들이 이동권 투쟁으로 인해 지각하는 일이 반복되자 "왜 선량한 시민에게 피해를 주느냐"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정치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막 승리했던 당시 국민의 힘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규정했고, 정부에서는 장애운동 자체를 적대시하며 처벌하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운영해야 하는 국가 살림에서 모든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정부와 정치인들은 마땅히 거쳐야 할 경청과 조율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채 장애인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장애인과 시민을 분리시키고 그들이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기를, 그렇게 여론의 불만이 점점 더 커져 장애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시민‘의 범주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 P95
『편견 The Nature of Prejudice을 저술한 고든 올포트 Gordon Allport는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가 외부인과 만날 때,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지 연구했습니다. 어떤 만남은 편견과 혐오의 재생산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만남이 상호 이해로 이어지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는 그 만남이 위로부터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인종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교장이, 기업주가, 대통령이 없다면 그 만남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가 지난 2년 동안 이동권 투쟁의 목소리를 방관했다는 몇몇 사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장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싸우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악화시킨 적극적 개입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P96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갖지못합니다. 근거는 언어의 형태를 한 지식으로 표현되는데, 그지식의 생산에는 자본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동권투쟁에 나선 장애인을 비난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처럼, 공동체가 오랫동안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개인에게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차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당사자는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러한 조건위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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