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감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후회에는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정신적 태도, 다시 말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의식을 전제하고있는 것이다. 영민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이 점을 간과할 리 없다.

후회(poenitentia)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에티카」에서

‘후회‘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에서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어야만 한다. 자신이 모든 불행을 직접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일종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불운을 자기가 초래한 것이라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은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오만이 또 있을까?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모든 불행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이런 사람은 후회라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들다. - P393

희망(spes)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inconstans laetitia)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결과가 어느 정도 의심되는 기쁨‘, 그러니까 ‘불확실한 기쁨‘이 바로 희망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확실‘이라는 단어에 강조점을 찍어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기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 아닌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희망이라는 감정 뒤에는 우리의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 있는 힘이 숨겨져 있다. 자신의 희망대로 상황이 펼쳐진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크면 클수록, 현재 우리가 느끼는 불확실성은 그만큼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희망이 주는 불확실성을 견디기에 너무나 나약하다면, 우리는 희망이 넌지시 보여 주는기쁨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칠 것이다. 희망이 약속하는 기쁨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몸을 떨 필요가 없을 테니까. 희망은 그것이 안겨 주는 기쁨이라는 앞면과 불확실성이라는 뒷면을 가진 동전과도 같다. 그러니 사실 어느 하나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가 제거되면, 나머지 다른 하나도 동시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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