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메리는 자신이 보기에는 가슴아프고 쓰라리게 여겨지는 경험들을 리처드 본인은 고난을 딛고일어선 성공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자신이 지금 앉아 있는 곳은 이 집이 아니고 자신이 함께 있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메리는 자신이 옛날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으며,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메리의 아버지가 마치 무덤 속에서 농간이라도 부려 지금 자기 딸이 옛날 그녀의 어머니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도록 손을 쓰고 있는 것과도 같은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비극은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농장에 도착한 메리는 암울한 현실을 직감했다. 메리에게 리처드는 제2의 아버지였고, 자신은 제2의 어머니로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어두운 비전을 말이다. 농장 생활이 시작되자마자 메리가 리처드에게 반감을 갖게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리처드의 나약함과 소시민성이 언젠가 자신의 삶에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와 우울함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메리가 결혼 전에 리처드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본 것은 그의 소시민성을 친절로 해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메리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삶을 궁핍하고 무겁게 만드는 그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다른측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남겨 준 삶의 칙칙함을 피하려고 홀로 생활하다가 끝내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 자신을 엄청난 삶의 무게로 짓누르게 될 제2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리처드에게 반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반감(aversio)이란 우연적으로 슬픔의 원인인 어떤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ㅡ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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