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담당 장관‘이 된다면
영국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 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사 제목만 흘깃 보고 넘어간지라, 한동안 영국에 ‘고독부‘ 같은 정부부처가 생긴 줄 알았다. 그 부처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혼자 상상하기도 했는데 실체는 내 공상과는 조금 달랐다. - P17
곧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다. 대인 접촉이 끊긴 이들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물질적 사회적으로지원하는 일은 물론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하다. 삶이 곧 외로움이고 그럼에도 우리 모두 살아가야 한다면, 그만큼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사람들틈바구니에서 복작거리며 하루를 보낸 뒤에도 헛헛함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은, 그만큼 그 의지가 소진됐기 때문 아닐까. 「수선화에게는 그 답까지 제시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살아갈 용기 역시 함께 얻는다. "울지 마라"라는 첫 행보다는 시의 마지막 부분 때문인 것 같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지구를 움직이고 음파를 전달하는 어떤 섭리 속에 내가 있다. 그 거대서사에서 나는 소외당하지 않는다. 내가 외롭다는 게 그 증거다. 그래서 나는 비록 외로울지라도 내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지는 않게 된다. - P18
그래서 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무력감을 느낀다. 고대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고대인에게는 시스템이 없었고, 대신 변덕스러운 신과 정령, 광포한 자연과 폭군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들은 세상이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품지않았다. 사방을 향해 생존을 빌며 살았다. 폭력적인 죽음과 신비로운 현상들이 너무 많았기에 역설적이게도 짜릿한 투쟁과 영광, 환희, 영적 충만의 순간을 현대인보다 더 자주 경험했다. 현대문명은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자체적인 작동 원리를 지닌 기계가 되어간다. 우리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걱정을더는 대가로 그 회색 기계 속 부품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변덕쟁이 신과 사나운 야생보다는 그편이 좀더 우리의 이치에 가까우리라 믿고,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다른 부품들 사이에 옴짝달싹 못한 채 서서, 이 무표정한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리자가 있기나 한 건지를 궁금해한다. 그러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기계는 늘 어딘가 고장이 나 있는 것 같아‘ - P24
배달 기사의 안전 운행은 오로지 그 자신이 신경써야 할 몫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배달 기사가 빗길을 달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음식을 주문했다면, 그의 안전에 대해우리도 약간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만약 후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대만 폭스콘 공장의 비인간적인 노동 실태가 폭로됐을 때 우리는애플 제품도 거부해야 하는 걸까? 내가 잠시라도 어떤 사회 시스템에 간여한다면, 그 시스템 전반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걸까? 이런 질문을 고민하다보면 우리는 금세 무력감에 빠진다. 세계는,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우리가 모든 산업부문의 근로조건과 하청 구조에 대해 샅샅이 공부하고 자신만의 견해를지녀야 하는 걸까? 온실가스 배출이나 동물 실험, 이른바 ‘공정무역‘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게 과연 한 개인이 할수 있는 일인가? 공부하려 한들, 그 실태가 다 조사되어 드러나있기나 한가? 누군가는 그런 문제를 조사하고 있을 테고, 그 결과를 통해법이나 협약이 개정되겠지. 나는 그 법이나 충실히 따르면 되지. 하다가 혹시 그게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논리 아니었나싶어 불안해진다. 전체 시스템이 사악할 때 나는 정해진 법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한다. - P31
한데 지식은 대개 짧지 않다. 지식이란 정보들이 논리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깊은 지식일수록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문맥이 중요하다. 책 한 권을 문장 단위로 분리해서 마구 흐트러뜨린 뒤 순서 없이 읽는다면, 그 책의 모든 글자를 다 본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는 내용은 아주 적을 게다. 그게 인터넷이고 소셜 미디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복제되어 퍼져나가는 자극적인 정보를 최근에는 ‘밈meme‘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훨씬 전에 ‘밈‘이라는 단어를 만든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이 창시자임에도 그 개념을 마뜩지 않아했다. 인터넷에서 번지는 맥락 파괴적 유행 요소를 밈이라고 부르는 건한 겹 더 부적절하게 들리는데, 그럼에도 그 현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밈과 가장 가까운 현실의 물건은 아마 감자칩 아닐까? 감자칩은 얇고, 자극적이고, 한번 포장지를 뜯으면 먹는 것을 멈추기 어렵다. 여기서도 ‘얇다‘는 말과 ‘자극적‘이라는 말은 얼마간 동어반복이다. 감자칩을 자극적으로 만들려면 기름에 코팅된면적을 넓혀야 하고, 소금을 비롯한 양념을 최대한 많이 뿌려야한다. 즉, 얇아야 한다. - P51
다만 세상에는 겪을 때에는 엄청나게 괴롭지만 그 시기를 넘기면 의외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충격도 있다. 외과 치료로 완치되는 단순골절 사고처럼. 나는 코로나19 범유행도 큰 차원에서는 그리되는 것 아닐까 싶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도 매년 한국에서 1200~1500명가량 나오는 걸로 추정되지만(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이재갑 교수) 그게 사회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반면 세상에는 충격의 단기적인 강도는 약해도 사람의 삶을 서서히, 그러나 지나고 보면 완전히 바꾸는 질병도 있다. 신경쇠약 같은 것들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최근 십 년 사이에 그런 새로운 바이러스에 걸려서 대단히 심오한 변화를 겪는 중이라고 느낀다. 병의 이름은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병을 옮기는 매개체는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들이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이걸 최소한 TV의 보급보다는 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할거라 확신한다. - P72
도박장에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세상 전체가 카지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가치관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검소한 생활과 자기 절제, 노동, 꾸준한 노력이 보답받고 또 찬미의 대상이 되는사회에서 인간이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 거품이 언젠가 꺼지면 그때는 또 얼마나 파괴적인 절망과환멸이 우리를 휩쓸 것인가. 그렇다고 거품을 꺼뜨리지 말고 이대로 놔둬야 하나? 한데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가.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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