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평소의 소신이나 가치관, 심지어 종교마저 기꺼이 내던져 버린다. 이것만큼 우리가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증표가 또 있을까?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빠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보다 위대한 감정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의지, 지성, 신념처럼 인간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들도 사랑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기때문이다. 노예가 어떻게 자신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자발적인 포기가 가능할까? 스피노자의 통찰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ㅡ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바로 이것이다.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기쁨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기쁨의 감정은 "인간이 더욱 작은 완전성에서 더욱 큰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결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욱 충만해진다는 감정이 바로 기쁨이다. 기쁨이라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사랑에는 외부 원인이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감정은 특정한 외부 대상을 전제로 하는 기쁨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 누군가를 만나 과거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을 느낄때,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 P79
대담함(audacia)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정의는 지나치게 평범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는 것이 대담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대담함을 일종의 욕망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의 비범함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살아가는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이 또 있을까? - P89
20세기 위대한 작가 F.스콧 피츠제랄드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민음사)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것아니겠는가.
개츠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형씨."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없어요.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 나는 머뭇거렸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개츠비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지금 방금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탐욕과 관련하여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만큼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다. 표면적으로 소설의 줄거리는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부와 관련된 인간의 탐욕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어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