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약 180만 년 전부터 동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인류의 조상일부가 새로운 형태의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니, 구석기시대의 아슐리안 석기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 눈물방울 모양의 주먹도끼로, 그것을 보면 대칭성과 정교한 만듦새가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치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어떤 존재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을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준다. 문화 누적을 이야기할 때 그시작점으로 가장 유력한 시기도 이때인 듯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우리는 참으로 묘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아프리카부터 유럽을 거쳐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슐리안 석기는 1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 두루 나타나는데, 어디에서 발견되건 그 모양이거의 똑같다는 사실이다. 즉, 어디를 가도 석기 사이에는 차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곧 석기를 만드는 지식이 문화를 통해 전수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석기를 만드는 지식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댐을 지을 수 있는 ‘지식‘을 비버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P375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경우, 날 때는 락토스(젖당)를 소화시킬 수 있지만 아동기를 지나면 이 소화 능력이 사라져버린다. 락타아제(락토스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생후 몇 년이 지나면 작동을 멈추는 것인데, 포유동물은 젖을 떼고 나면 더 이상 젖을 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부 유럽과 아프리카 몇몇 지대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덕분에 아이들이나 마셨지 어른들까지는 마실 수 없었던 신선한 우유가대량으로 공급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유리한 쪽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어 락타아제 생산이 늦게까지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사람들이 남긴 우유 마실 줄 아는 후손이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남긴 후손보다 더 많아졌다(이 사실은 유전자 자체를 통해 확인된다)." 이렇듯 유전자 변화가 일어나자 문화적 혁신이덩달아 일어났다. 이 새로운 락타아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은 소떼를 훨씬 대규모로 기르기 시작했고, 나아가 치즈를 만들어내는 등 우유를 활용하고 가공하는 방법을 더욱 늘려간 것이다. 이렇게 문화적혁신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덩달아 다시 유전자 변화가 일어났고, 이런 식으로 연쇄반응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이렇게 문화적 혁신(이를테면 소를 기르는 것)에서 유전적 반응(락토스소화 능력을 가진 성인)이 나올 수 있다고 하면, 도덕성과 관련된 문화적혁신에서도 일련의 유전적 반응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리처슨과 보이드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이러한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에 힘입어 여타 유인원과 달리 소집단 차원의 사회성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그렇게 발전시킨 부족차원의 초사회성은 오늘날의 인간 사회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부족 본능 가설(tribal instincts hypothesis)"에 따르면, 인간 집단은 주변의 이웃 집단과 어느 정도는 늘 경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서 대개 승리하는 쪽은. 일련의 문화적 혁신을 통해 (우연이라도) 가족을 뛰어넘어 더 큰 규모로 협동하고 결집한 집단이었다(이는 다윈의 주장과 꼭 같은 내용이다. - P378
그런 문화적 혁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상징적 표시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나타내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는사실이다. 아마존 부족이 흔히 이용하는 문신과 얼굴 관통 장식부터시작해 유대교 남자들이 반드시 치러야 했던 할례 의식을 거쳐 영국의 펑크족이 애호하는 문신과 얼굴 피어싱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를 온몸으로 드러내기 위해 엄청나고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때로는 고통을 감내하기까지 한다. 애초 이런관습은 몸에 물감을 발라 색을 입히는 등의 소박한 방식이었을 것이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작이 어떠했건. 이러한 상징을 이용하는 집단은, 나아가 그 상징을 좀 더 영속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집단은 친족을 넘어서 더 넓은 범위에까지 ‘우리‘의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이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한 말을 쓰면 우리는 그들과 더 잘 신뢰를 쌓고 협동하는 법이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가치와 규범을 가지기를 기대하고 말이다. 그리고 일부 집단은 그렇게 초기 부족주의라는 문화적 혁신이 일단 일어나자, 유전적 진화에 밑바탕이 되는 환경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리처슨과 보이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한 환경은 그 집단들의 삶에 맞는 새로운 사회적 본능들이 잘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도덕적 규범에 의해 사람들 삶의 틀이 짜이고, 그 도덕적 규범을 배우고 내면화할 수 있는 식으로 삶이 설계되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더불어 수치심과 죄책감 같은감정도 새로 생겨나 규범이 준수될 확률을 높인다. 또 사회적 세계가 상징적 표시를 가진 여러 집단에 의해 나누어지기를 기대하는 심리도 존재하게 된다." - P379
유전적 진화가 어느 정도 속도로 이루어지는지는 자료가 있어야만대답이 가능한 문제인데, 마침 인간 유전체 규명 계획 (Human GenomeProject)이 진행되어준 덕에 문제 해결의 자료는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이 계획에 따라 몇몇 연구팀이 지구상 모든 대륙의 사람들 수천명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유전자 배열을 분석해놓았기 때문이다. 유전자라는 것이 원래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표류하기 마련이지만, 무엇이 이러한 임의적 표류에 해당하고 무엇이 자연선택에 ‘이끌린‘ 유전자 변화인지는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나온 연구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고, 알고 보니 굴드의주장과는 정반대라는 것이 드러났다. 유전자의 진화 속도는 최근 5만년 사이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선택 압력에 대한 유전자변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부터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해, 2만 년 전부터는 가속도가 점점 더 증가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러다가 완신세를 거치면서 유전자 변화 속도는 정점에 이르렀으니, 이는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387
나는 그 학문적 지식을 총 네 가지의 ‘증거‘로나누어 집단선택에 대한 변론으로 활용했다."
증거 A: 중대 과도기를 통해 초개체가 만들어진다. 이제까지 지구에서 살아온 생명체의 역사는 ‘중대 과도기‘의 본보기가 몇 번이고되풀이된 과정이었다. 생물학적 위계질서의 한 차원에서 무임승차자 문제가 무난히 해결되고 나면, 그다음 단계의 위계 서열에 들어서는 이전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한 탈것(초개체)이 등장한다. 이러한 초개체는 집단 내 노동 분업, 협동, 이타주의 등의 새로운 특성들을 지닌다. 증거 B: 공통된 의도를 통해 도덕 매트릭스가 생겨난다. 우리 인간은공통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이의 머릿속 생각을 읽는 고유한 능력을가지는데, 인간은 이 능력을 가지면서 마치 루비콘 강을 건너듯 집단 내에서 아주 원활히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 인간들은 이능력을 바탕으로 서로 협동하고 분업을 이룬 것은 물론, 공통의 규범을 만들어 서로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도덕 매트릭스도 이 공통의 규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증거 C: 유전자와 문화는 공진화한다. 우리 조상들이 루비콘 강을건너 서로의 의도를 공유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 인간의 진화는 양갈래 실이 엉키듯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새로운 관습 ·규범 · 제도를만들어내면 이집단적인 특성이 가지는 적응의 정도도 변화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로 인해 우리가 일련의 부족 본능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집단에 속했는지 표시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며, 그런 표시를 한 뒤에는 자기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과 우선적으로 협동하려는경향을 보인다. 증거 D: 진화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의 진화는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에 속도가 멈추지도 느려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속도에 불이 붙었다.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는 최근 1만2000년 사이에 가장 맹렬하게 이루어졌다. 인간의 본성이 5만 년 전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인 만큼, 오늘날 지구를 살아가는 수렵 채집자를 보고 그들이 인간 본성의 보편적 모습을대표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해서 바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지금으로부터 7만~14만 년 사이에 일어난 극심한 환경 변화를 비롯해 (완신세에 일어난 것과 같은) 문화적 변화를 좀 더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393
인간 본성 대부분은 자연선택이 개인 차원에서 작동한 결과 형성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렇지, 전부 그렇지는 않다. 9.11 사태 이후숱한 미국인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집단과 관련된 적응의 특성도 몇 가지 지니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중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기적인 영장류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보다 크고 고결한 무엇의 일부가 되려는 열망도 갖고 있다. 우리의본성은 90퍼센트가 침팬지와 같고, 나머지 10퍼센트는 벌과 같다." 만일 이 주장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이집단적으로, 또 군집으로 행동하는 까닭을 훨씬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 머릿속에 스위치가 하나 들어 있는 것은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조건만 딱 들어맞으면 우리 안에 잠재한 꿀벌의 군집 능력을 활성화하는 그런 스위치 말이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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