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루클린 공립도서관에서 그런 책 몇 권을 빌릴 수 있었고, 이어지는 주에는 혼란스럽고도 무계획적인 방식으로 그 책들을 훑었다. 별 체계 없이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건너뛰며 출처를 적지않은 채 아무 내용이나 메모했다. 나는 문서 연구에 대해서나 서지정보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게 이점이었다. 나의 거칠고 타협의 여지 없이 비체계적인 접근법 덕분에 책들이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남자들 각각의 개인적인 특징은 카네기의 자족적인 독실함, 그랜트의 근본적인 품위, 포드의 딱딱한 실용주의, 쿨리지의 수사적 검약 등등 당시 내가 생각하던 그들 모두의 공통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즉,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베벨이 글로 옮기고싶어하는 확신이라는 걸 알았다. - P311

아버지는 감정의 독점권을 행사했다. 아버지의 행복은 그 어떤반대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면, 모두가 기꺼이아버지의 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농담에 웃고 뭐든 아버지가떠올린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해야 했다- 재앙에 가까운 집 인테리어든, 스물네 시간 내내 하는 인쇄 업무든, 누군가 이야기한 이탈리아인 정육점 주인을 찾아 브롱크스를 돌아다니는 것이든. 하지만 자기 기분이 처지거나 억울할 때면,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화가 나 있을 때의 아버지 얼굴처럼 결의에 찬 얼굴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슬프게도, 그 결의는 오직 자신에게만 고정된 결의였다 결의에 차겠다는 결의에 찬 얼굴. 일단 그런 상태가 되면,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모든 형태의 타협을 자기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 전부가 부식되어 쓸려나갈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아버지와 같이 살았고, 우리는 내가 독립한 뒤에도 가까이 지냈다. 그 모든 세월 동안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그 무엇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 P312

이 모든 이유로, 아버지가 "급진적인 행동"이라는 말로 무엇을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알아내는 건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잭이 아버지의 말에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던 건 기억난다.
"제가 한 생각은요." 잭이 생각에 잠겨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 자리가 유럽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보도하는거죠. 최전방에서요. 헤밍웨이처럼. 어쩌면 최전방에 합류할지도 몰라요. 국제여단이요. 아시죠? 뭔가 하는 거예요. 이렇게 빈둥거리고있으니 죽을 것 같아요."
나는 우울하게 술잔을 들여다보는 그 두 사람을 보고 당혹감에 몸을 떨었다. 겉만 번드르르한 그들의 말. 소년 같은 진지함. 결정이 정말로 어떻게 내려지는지 이들이 알았다면, 진정한 권위의 목소리가 얼마나 조용조용한지 들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어떤 형태로든 진짜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불가능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 P325

"혹시 내가 악의나 복수심에 따라 움직인다거나, 그보다 더 나쁘게는 잔인함에서 변태적인 전율을 찾는다는 얘기를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 자네는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같군. 내가 보기에 자네는 이 모든 일이 다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리는 것입니다."
당시에 나는 그 표현이 이 상황에 적용되는 것인지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가 남이 자기 말을 인용하는걸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바로 그거야. 그리고 현실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배너가 존재한 적도 없던 세상에서 배너의 흔적이 발견된다니,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인가?"
앤드루 베벨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두려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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