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절이 힘든 만큼 여러분 대부분이 지원할 수 있는 거의모든 일자리에 지원한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고용할 사람이 이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기도 합니다. 프렌티스 양은 이 일자리를 원하세요?"
"네."
"왜죠?"
나는 내가 그런 식으로 대답할 줄 몰랐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준비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말이 나왔다.
"모든 걸 만드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데, 한 가지 물건을 만드는 곳에서 일할 이유가 있을까요? 돈이 바로 그거잖아요, 모든 것. 최소한 돈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죠. 돈은 우리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보편적 상품이에요. 그리고 돈이 상품의 신이라면 여기가." 나는 손바닥을 뒤집어 사무실을 감싸는 호선을 그렸고, 그건 그 너머의 건물을 의미했다. "그 신의 최고 신전이죠."
긴 침묵 - P260

나는 이들의 소설에 들어 있는 질서라는 관념에 위안을 받았다. 그들의 소설은 전부 범죄와 혼란으로 시작되었다. 분별력과 의미자체마저 시험대에 올랐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행동, 동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법성과 혼란이 지배하는 짧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나 질서와 조화가 회복되었다. 모든 것이분명해지고 설명되고 세상과 어우러졌다. 이 점이 내게 어마어마한 평화를 주었다. 아마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이 여자들이 내게 여성적 세계의 전형적 개념에 순응할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연애나 가정의 축복만을 다루지않았다. 그들의 책에는 폭력이 있었다 그들이 통제하는 폭력. 이작가들은 직접 모범이 되어, 내가 위험한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걸보여주었다. 그들은 믿음직한 사람 혹은 순종적인 사람이 되는 데는 아무런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독자들의 기대와 요구가 존재하는 건, 의도적으로 그런 기대를 혼란스럽게 하고뒤집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내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 작가들이었다. - P264

베벨 투자회사에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평생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할 기회가 생긴 한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 P267

그는 책을 책상 위로 미끄러뜨렸다. 나는 책을 집어들었다. 겉표지는 회녹색이었으며 글씨는 검은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달러 지폐를 떠올리게 하는 색 조합이었다. 삽화나 장식은 없었다. 그냥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채권
장편소설
해럴드 배너

이 단어들을 타자기에 입력하는 지금, 나는 앤드루 베벨이 그날주었던 바로 그 책을 보고 있다. 세월이 지나 겉표지는 이제 쉽게 상하고, 햇볕에 바랜 책등에 양쪽 덮개가 실 한 가닥으로 매여 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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