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성적 추론 능력을 가진 개인도 한 가지에서만큼은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입장(보통 직관적인 이유로 갖게 되는 입장)을 갖게 되면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를잘도 찾아낸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이성적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 선하고 개방적이고 무엇보다 진실을 중시할 거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개인적 이해나 평판의 문제가 얽힌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그런 개인을 모아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면, 즉 일부가 추론 능력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주장을 꺾는다 해도 개개인모두가 공동의 연대 혹은 공동의 운명을 느껴 서로가 적정선을 지키며 상호작용을 해나갈 수 있다면, 결국에 그 집단에서는 훌륭한 추론 능력이 사회 체계의 창발성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 찾기를 목표로 하거나(첩보 기관이나 과학계) 훌륭한 공공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입법부나 자문위원회) 집단 혹은 기관에서 지식과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의 목표가 단순히 훌륭한 사고가 아니라 훌륭한 행동이라면, 우리는 더더욱 합리주의를 손에서 놓고 직관주의를 끌어안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 P180
•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강박적일 정도로 염려한다. 물론 이런 염려는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에 우리는 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한다. • 의식적 추론은 마치 대통령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공보관처럼우리의 모든 입장을 자동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 우리 안에 있는 공보관의 도움을 받아 종종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 잘못을 너무도 잘덮어 가리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스스로가 잘못이없다고 믿는다. • 이성적 추론 능력은 우리가 원하는 결론이 있으면 갖은 수를 써서 그것에 도달하게 해준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을 때는 "내가 이것을 믿어도 될까?"라고 묻고, 무엇을 믿고 싶지 않을 때는 "내가 이것을 믿어야만 하나?"라고 묻는다. •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개인보다 집단을 염두에두고 판단을 내릴 때가 많다. 우리가 팀을 지지하고 팀에 헌신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이성적 추론 능력을 활용한다. - P181
WEIRD권 사람들에게서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이 여럿 발견되는데, 다음과 같은 간단한 일반화 속에서 포착해볼 수 있다. 즉, WEIRD의 특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세상이 관계보다는 별개의 사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서양인의 자아개념이 동아시아인에 비해 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나는 ~이다(혹은 ~하다)"라는형식으로 문장 20개를 작성하라고 하면, 미국인은 자신이 가진 내적인 심리 특성 (행복하다. 외향적이다. 재즈에 관심이 있다)을 열거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자신의 역할과 관계 (아들이다, 남편이다. 후지쓰의 직원이다)를 열거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러한 차이는 피상적 차원에만 그치지 않으니, 심지어 시각적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 과제 중 ‘도형 안에 선 긋기‘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 들어가면 피험자들은 먼저 내부에 선이 하나 그어진 정사각형을 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페이지를 넘기면 원래 정사각형보다 크거나 작은 정사각형이 있으나 안은 텅 비어 있다. 그 안에다 이전 페이지의 도형과 똑같은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이 피험자의 과제인데, 절대치를 맞추거나(즉, 새로운 도형의 크기는 무시하고 선의 길이를 똑같이 몇 센티미터로 맞춘다) 혹은 상대치를 맞추는 식이다(도형 크기에 따라 길이 비율을 맞춘다). 이 과제를 수행해보면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은 절대치를 맞추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들의 눈에는 선이 독립적 사물로 인식되고, 따라서 그것이 별개로 기억에 저장되기때문이다. 반대로 동아시아인들은 상대치를 맞추는 과제에 미국인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동아시아인들은 자동적으로 부분 간의 관계를 먼저 인식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인식에 이런 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고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전체적 사고를 하는 데 반해 (전체 맥락및 부분 간의 관계를 보는 사고방식), WEIRD권 사람들은 좀 더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초점이 되는 대상을 해당 문맥에서 따로 떼어내 그것을 어떤 범주에 집어넣은 후, 그 범주에 적용되는 사실은 그 대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는 사고방식).‘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칸트와 밀 이래로 WEIRD 권 철학자들이 왜 대체로 개인주의적이고 원칙 지향적이고 보편주의적인 도덕 체계를 내놓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율적 개인들이 모인 사회를 다스리려면 그런 도덕이 필요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 P190
그러나 비WEIRD권 사회에 살면서 관계 · 맥락·집단·제도를 인식할 확률이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개인을 보호하는 일에만 그렇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다. 즉, 이때에는 좀 더 사회중심적인 도덕성을 가지게 되는데, 개인들의 요구보다 집단과 기관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도덕적 관심사가 피해와 공평성의 원칙만 바탕으로 해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와 공평성 말고도 사람들이 염두에 두는 도덕적 관심사가 더 있을 것은 물론, 이런 사회는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도덕적 덕목도 추가로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한 관심사와 덕목들이 바로 2부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그와관련한 도덕심리학의 두 번째 원칙이 나오는데,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 P192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슈웨더가 오리사에서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발전시킨 새로운 도덕성 이론이었다(그 내용은 1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슈웨더는 그 연구를 발표하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그동안 모은 600여 개의 인터뷰 기록을 계속분석했다. 그 결과 도덕의 주제가 크게 세 가지 군(群)으로 나뉜다는것을 알아낸 그들은 거기에 각각 자율성의 윤리, 공동체의 윤리, 신성함의 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각 윤리는 개개인이 무엇을 진정 중요한 것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 P194
자율성의 윤리에서는 사람들이 더마다의 욕구• 필요• 애호를 지닌 자율적 개인이라는 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욕구• 필요• 애호를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인권·자유·정의 같은 도덕 개념이 발달하는데, 그래야 사람들이서로의 계획에 큰 타격을 주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윤리가 바로 이 자율성의 윤리이다. 자율성의 윤리는 존 스튜어트 밀이나 피터 싱어(Peter Singer)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들은인간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을 때에만 정의나 인권의 가치를 인정한다)."칸트나 콜버그 같은 의무론자들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이들은 전체의복리가 손상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의와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양의 일상적인 사회를 걸어 나와 보면, 사람들이 쓰는 도덕적 언어에는 두 가지가 더 있음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공동체의 윤리인데 여기에 바탕이 되는 생각은, 사람이란 가족·팀·군대·회사·부족·나라 등 자신보다 더 큰 실체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자신보다 큰 이 실체들은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총합을 넘어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존재하는 것이자 진정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들을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실체 내에서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해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세상에 의무 · 위계질서·공경·명성 · 애국심 등의 도덕적 개념이 발달한 사회가 많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서양에서처럼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거나 자기만의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고 고집하면 이기적이고 위험한 사람으로 비친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분명 탄탄히 짜인 사회 망을 느슨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있는 사회제도와 공동의 실체를 허물어뜨리고말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성함의 윤리에 바탕이 되는 생각은 사람이란 한순간 머물다 가는 존재로, 몸은 그릇이요 그 안에는 신성한 영혼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을 단순히 의식을 좀 더 갖춘 동물로만 여기지 않는다. 인간은 신의 아들이며, 따라서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몸은 놀이터가 아니라 신전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남자가 생닭을 가져다 성행위를 할 경우, 설령 그 일이 어떤피해도 끼치지 않고 그 누구의 인권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자 창조주를 욕되게 하는 일이며, 우주의 신성한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거룩함과 죄악, 순결과 오염, 고결과 타락등의 도덕적 개념을 발달시키는 사회가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통속적인 서구 사회에서처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이 방탕이자 향락, 나아가 인간의 저급한 본능에 대한 칭송과 다름없다. - P195
더불어 나는 슈웨더의 이론을 가져다 (내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이 내놨던 정당화 근거들을 분석해보았다. 이론은 기막히게 들어맞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학생들은 거의 자율성의 윤리만을 도덕성의 언어로 삼아 이야기한 반면, 다른 집단(특히 노동자 계층 집단) 사람들은 공동체의 윤리를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신성함의 윤리도 좀 더 이용하고 있었다." - P197
그보다 이곳의 도덕적 세계에서는 개인보다 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가 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곳 사람들은 한 무리의 큰 가족(하인도 포함하여)에 속한 채 서로가 서로에게 무척이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평등이나 개인의 자율성 같은 것은 떠받들어야 할 가치가 못 되었다. 그보다는 노인·신·손님을 깍듯이 모시고, 아랫사람을 보호해주며, 자기 역할에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공동체의 윤리가 무엇인지는 슈웨더의 책을 통해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난생처음 그것을 몸으로 실감한 것이 인도에서였다. 사회 구성원의 의무를 강조하고, 노인을 공경하고, 집단에 봉사하며,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는 도덕적 규약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물론 볼썽사나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더러 권력자라고 해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자기 힘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랫사람(특히 여자)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윗사람 마음이 죽 끓듯 바뀌면 여지없이 저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야 나는 처음으로 고향의 도덕성에서 발을 빼볼 수 있었다. 그 발을 인도에 디디고 공동체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자율성의 윤리를 바라보니, 이제 자율성의 윤리에는 개인주의가 너무 지나치고 자기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도에 머물렀던 세 달 동안 나는 미국인을 만날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시카고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누군가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하는 투를보니 영락없는 미국인이었다. "이봐요, 당신이 저 사람한테 말좀해줘요. 이 짐칸은 내 자리 쪽에 있으니까. 이걸 쓸 권리는 나한테 있다고." 순간 내가 다 민망했다. - P200
당파심에 의한 분노에서 해방되자 홀가분한 것이 참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그렇게 화가 나지 않으니 옛날처럼 의분에 차서 어떻게든 "우리가 옳고 그들은 틀렸어"라고 결론 내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내게는 새로운 도덕 매트릭스를 탐험할 여유가 생겼고, 그것들 하나하나도 나름의 지적 전통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1991년 슈웨더는 문화심리학이 가진 깨달음의 힘을 다음과 같은글로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타인이 품은 신념이라도 우리에게 유용한 부분이 있다. 사물에관한 그들의 신념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합리성 안에 잠자고 있던 여러 가능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생처음, 아니 다시한번, 그런 신념들이 가진 힘을 몸소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똑같이 한 가지 ‘배경막‘만 쳐 있지는 않은 것이다. 애초 우리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 P212
도덕 매트릭스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지만, 그것은 다른 매트릭스가 가진 논리(심지어 다른 매트릭스의 존재까지도)를 못 보게하는 면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 이상의 도덕적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데 무척이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사회를 운영하는 정당한 틀도 하나 이상있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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