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모든 이점을 누려온 벤저민 래스크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는 영웅적으로 부상할 특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력과 끈기에 관한 것도 아니고, 티끌로 황금의 운명을 만들어낸 불굴의 의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 P13

아버지의 사업체를 매수할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벤저민은 버지니아주 소재의 제조사와 영국의 무역회사가 서로 입찰 경쟁을 벌이도록 부추겼다. 과거의 기억 중 이 부분과는 거리를두고 싶었기에, 영국 회사가 이겨 담배회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보니 즐거웠다. 하지만 정말로 큰 충족감을 주었던건, 이 매각을 통해 얻은 이윤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작업하고, 새로운 수준의 위험을 관리하고, 과거에는 고려할 수 없었던 장기 거래에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벤저민의 부가 증가하는 것과 정비례하여 그의 소유물은 줄어드는 걸보고 혼란스러워했다. 벤저민은 웨스트 17번가의 브라운스톤 저택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해 남아 있던 가족의 소유물 전부를 팔아 치웠다. 옷과 서류는 여행가방 두 개에 딱 들어갔고, 여행가방은 그가 스위트룸에 묵고 있는 왜그스태프호텔로 보내졌다.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치란 천박한 부담이었다.  - P23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면, 베저민은 금융계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금융계의 복잡성이 한 가지 이유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벤저민에게 자본은 균 하나 없는 생물로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본은 움직이고 먹고 자라고 새끼를 치고 병들며 죽을 수도 있지만, 깨끗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벤저민에게 이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투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벤저민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과 멀어졌다. 그는 단 한 장의 지폐도 만질 필요가 없었으며, 자신의 거래로 영향을 받는 사물이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글을 쓰는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자본이라는 살아 있는 생물이 움직이기 시작해 아름다운 패턴을 그리며 점점 더 추상적인 영역으로 들어갔다. 가끔은 벤저민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본 자신의 식욕을 따라가기도 했다. 이 점이 그 생명체가 자유의지를 행사하려 한다는 게 벤저민에게 또하나의 기쁨을 주었다. 벤저민은 그 생명체가 실망감을 안겨줄 때조차 그놈에게 감탄했고, 그놈을 이해했다. - P24

저택은 파티의 소음과 셸던이 해둔 번쩍번쩍한 장식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달라져갔다. 헬렌은 질서정연하고 신중한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침묵에는 침착한 자신감이 있었다. 마치 조금만 노력하면 침묵이 언제나 이길 수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공기에 배어있는 미약한 서늘함은 향기롭기도 했다. 헬렌이 인상적이라고 느낀건 네덜란드 유화나 프랑스식 샹들리에가 그리는 별자리, 모든 모퉁이마다 버섯처럼 피어나는 중국 도자기 같은 부유함의 뚜렷한 증거가 아니었다. 그녀는 보다 사소한 것에 감명받았다. 문고리. 어둑하고 우묵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의자, 소파와 그 주변의 빈공간. 그 모든 것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것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지만 진짜 물건이기도 했다. 쓰레기투성이 세상이 망가진 사본을 만들 때 참조한 진품들. - P64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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